항목 ID | GC0090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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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有謙 |
영어음역 | Lee Yugyeom |
이칭/별칭 | 수익(受益),만회(晩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광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지신(李之信), 아버지는 증승지(贈承旨) 이력이다.
광해군 때 스승 조수륜(趙守倫)이 화를 당하여 죽자 스승의 친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는데 그가 예에 따라 습렴을 하였다. 또 인목대비의 폐비론이 일자 그에 대한 잘못을 직언하여 죄를 받았다. 이때 초야에 있으면서 당시 역(易)에 밝던 덕신정(德信正) 이난수(李鸞壽)를 따라 하도(河圖)·낙서(洛書)와 괘효(卦爻)를 강구하여 깨쳤다. 1623년 인조반정 직후 신녕현감에 임명되었다. 그 뒤 위수(衛率)·공조좌랑·함흥판관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에 앞서 사우(士友)를 결집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1637년부터 1645년까지 형조랑(刑曹郞)·순창군수·태복시판관·내승·첨정을 역임하고, 대구부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특별히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 뒤 내직으로 들어와 판결사가 되었고, 또 외직으로 나가 금성현감·김제군수를 거친 뒤 공조참의·호조 참의를 역임하였다. 만년에 관직을 사양하고 한가로이 지내면서 기영회(耆英會)를 만들었다.
처음 조수륜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고, 이때 성혼(成渾)의 학통을 받들었으며, 김장생(金長生)을 스승으로 섬겼다.
저서로는 『만회유고(晩悔遺稿)』4권 2책이 있다.
묘소와 묘표, 신도비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다.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송준길(宋俊吉)이 글씨를 썼으며 민유중(閔維重)이 전액하였다.
고양의 문봉서원(文峯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