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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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相晟 |
영어음역 | Lee Sangseong |
이칭/별칭 | 여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장리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恢). 정종의 일곱째 아들 이덕생(李德生)의 후손으로 승지에 추증된 이징후(李徵厚)의 손자이다. 양주(楊洲) 조희석(趙禧錫)의 외손자이며,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된 이제상(李齊尙)이다. 아들은 이정인(李廷仁)이다.
이상성(李相晟)[1690~1741]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2년(숙종 38) 정시무과(庭試武科)에 급제한 뒤 사랑(司郞)·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 등을 거쳐 선전관(宣傳官)·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상원군수(祥原郡守)·훈련원정(訓練院正)·내금위장(內禁衛將)을 역임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에 어영천총(御營千摠)으로 있을 때 종을 시켜 한강의 배에서 끌어내게 한 사노(私奴)가 구타로 죽은 일로 인해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어서 김해부사(金海府使), 삼화부사(三和府使),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를 거쳤으며, 1732년(영조 8)에는 영변부사(寧邊府使)에 임명되었다. 1735년 황해도병사(黃海道兵使)를 거쳐 회령부사(會寧府使)를 지냈고, 북병사(北兵使)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묘소와 아들 이정인이 지은 묘갈(墓碣)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