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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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普赫 |
영어음역 | Lee Bohyeok |
이칭/별칭 | 충정,성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원명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 시호는 충정(忠貞).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재종손이며,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의 조카이다. 아들인 이경호·이중호 형제를 비롯하여 후손 6명이 대과에 급제하였고, 손자 이재협은 1789년(정조 13)에 영의정을 지냈다.
이보혁이 1728년(영조 4) 성주목사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그는 이속과 장정들을 불러 모아 훈련을 시키고 병기를 정돈하였다. 이때 안무사 황선(黃璿)이 그에게 문무의 재능이 있음을 알고 우방장(友防將)으로 차출하여 고령·지례·거창 세 고을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게 하였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뒤 조정에서 그의 공을 인정하여 분무공신(奮武功臣)이라는 훈호(勳號)를 내리고 인평부원군(仁平府院君)에 봉하였다. 이로써 이보혁은 용인이씨 중 조선조에서 1품직의 공신에게 내리는 부원군(府院君) 칭호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그 후 동의금부사·호조참판·병조참판·부총관 등을 거쳐 1753년에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공조판서가 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대곡4리 2번지에 있다. 2001년에 가평군의 고원부지로 편입되어 이장하기 위해 묘를 파자 상석 아래 지석(誌石) 12매(27㎝×21.5㎝×14.5㎝)가 발견되었다. 그 중 1매는 영조가 친히 지은 어제(御製)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