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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세곡을 모았다가 강물이 불어나기를 기다려 금장강(錦障江) 에서 배에 싣고 남한강 수로를 따라 내려가서 경강 의 군자창 에 납부하였다. 정선 에서 흘러온 동강 이 영월 에서 서강 과 만나는데, 영월 을 통과하는 동강 을 당시 금장강 으로 불렀다. 평창군 은 전세를 포로 납부하였기 때문에 육로로 직접 납부하였고, 횡성 은 4월에 원주 흥원창 으로 수송하였다가 배에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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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동강 절벽에 있는 바위. 낙화암(落花巖) 은 영월군 동쪽 동강 [ 금장강 ] 변 층암 절벽에 있는 바위이다. 낙화암 은 단종 이 죽은 후 단종 을 모시던 궁녀, 관비, 궁비, 무녀 6명과 시종 1명이 통곡을 하고는 동강 으로 투신하여 순절한 곳이다. 일설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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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금강정 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정자이다. 금강정 이 있는 동강 변에는 현재 테마공원인 금강공원에코스튜디오 가 있어서, 영월군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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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있다. 단종 이 죽자 단종 을 모시던 시녀와 하인들이 다투어 영월군 의 동강 에 투신하니 강이 시체로 덮였다고 한다.[1권 제14장] 또한 청령포(淸泠浦) 의...은 ‘두견에게 절하다'라는 뜻이다. 단종 이 죽은 후에 현재 영월읍 영흥리 동강 의 절벽에서 강으로 뛰어내려 죽은 시녀들이 죽은 뒤에도 혼은 단종 이 묻혀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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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花巖碑) 에는 ‘증정기원[1629] 후 두 번째 임술[1742] 7월일'이라는 건립 연대가 표시되어 있다. 270여 년 전에 세워진 원비는 1910년 여름 비석 윗부분이 동강 으로 떨어져 물에 잠겼다. 나머지도 겨울 부랑자에 의하여 동강 으로 던져졌다. 비문의 탁본은 해서체인데, 가로 21㎝, 세로 22㎝의 크기로 ‘청령포금표비'와 함께 규장각 에 보관되어 있다. 1924년 영월군수 홍양 이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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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 통인이 미처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그 때 단종 의 나이 17세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東江) 에 몸을 던져 죽어서 둥둥 뜬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다. 단종 이 항상 객사(客舍)에 있으므로, 촌백성들로서 고을에 오는 자는 언제나 누(樓) 아래로 와서 단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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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관에 대하여 달라진 영월 지역민들의 의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곧 단종 을 바라보는 당대 영월 지역민들의 의식이 잘 드러나는 자료인 것이다. 섶다리놓기 는 영월군 주천면 에 흐르는 주천강 에서 해마다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주천면 판운리 와 영월읍 의 동강 유역에서도 해마다 섶다리 를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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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3㎞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청령포 의 지형을 보면 동·남·북 삼면(三面)이 깊은 강물로 막혀 있는데, 그 각각이 남한강(南漢江) 의 지류인 서강(西江) , 동강(東江) , 금강(錦江) 이었다. 또한 서쪽은 66개나 되는 산봉우리로 막혀 있었다. 이로 인하여 청령포 는 나룻배로 강을 건너지 않는 한 절대로 빠져나갈 수가 없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