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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지방 관아 건물. 관풍헌(觀風軒) 은 1428년(세종 10) 영월군수 김복항 이 건립하였다. 관풍헌 은 영월 청령포 로 유배온 단종 이 홍수를 피하여 1456년 관풍헌 에서 생활하였고, 1457년 10월 사약을 받은 곳이다. 1971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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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으나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자규루 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984-3번지 에 있다. 관풍헌 동쪽으로 약 50m쯤 떨어진 곳이다. 자규루 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자규루 는 단종 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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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홍수를 만났으며, 그로 인하여 처소를 읍내 영월 객사 의 동헌인 관풍헌(觀風軒) 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와 함께 이듬해인 1457년부터는 관가의 감시도 다... 단종 마저 영월 로 내쫓은 후로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편 단종 의 관풍헌 생활은 평온하였다. 단종 은 마음이 산란하거나 심사가 울적할 때 퉁소 부는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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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정조 이후에 장릉(莊陵) 의 정자각(丁字閣)·비각(碑閣)· 장판옥(藏板屋) · 배식단 과 함께 관풍헌(觀風軒) 과 자규루(子規樓) 에 대하여 1년에 네 차례 조정에 관리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배식단사 는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으나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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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팽년(朴彭年) 등을 중심으로 단종 을 복위시키려는 사건이 일어나자, 노산군 으로 강봉되어 청령포(淸泠浦) 로 유배되었다. 청령포 에서 유배생활 중 홍수로 관풍헌(觀風軒) 으로 옮겨졌다. 금성대군 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자, 1457년 세조 는 단종 의 사사(賜死)를 명하였고, 단종 은 17세의 나이에 죽임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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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숙종 때 단종(端宗) 이 복권되면서 영월군 에서 영월부(寧越府) 로 승격되었다. 영월부 의 관청 건물이 있던 곳은 현재 영월읍 영흥리 인데, 현재 관풍헌(觀風軒) 과 자규루(子規樓) 가 남아 있다. 영월부 의 객사는 정청(正廳)인 내성관(奈城館) , 서익헌(西翼軒)인 망경헌(望京軒) , 동익헌(東翼軒)인 관풍헌 세 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현재 세 건물은 조계종 사찰의 포교원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관풍헌 의 동남쪽으로 30m쯤 떨어진 곳에 자규루 가 있다. 영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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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산솔면 ] 화원리 에 추익한 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추충신 추익한 은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냈던 사람이다. 단종 이 영월 로 유배되어 외롭게 관풍헌(觀風軒) 에 있을 때 맛이 좋은 산머루와 다래를 따다가 진상하고 자주 문안을 드렸다. 어느 날, 추익한 이 예외 없이 산머루와 다래를 따서 단종 에게 진상하려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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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국법으로 다스려야 한다.”라고 계속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 단종 은 1457년 10월 24일 오후 5~7시 사이, 영월 객사 의 동헌인 관풍헌 에서 사약을 받고 사망하였다. 사육신의 상왕복위운동은 형식적이나마 상왕의 대우를 받았던 단종 을 노산군 으로 강등케 하는 계기가 되었고, 금성대군 의 단종복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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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위에 둥근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 질병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약사여래좌상임을 알 수 있다. 일설에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영월부 관아 였던 관풍헌 을 최근까지 보덕사 의 포교당으로 사용하면서 금당인 약사전(藥師殿)에 봉안하였다가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 성보박물관 에 이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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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셨던 때의 옛터'라는 의미이다. 청령포 에서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던 단종 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가을 홍수를 만나면서 청령포 를 떠나 관풍헌(觀風軒) 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관풍헌 은 1428년(세종10) 영월군수 김복항(金福恒) 이 건립하였으며, 영월군 의 관청으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관풍헌 으로 옮긴 이듬해인 1457년부터는 관가의 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