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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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瑬昌 |
영어공식명칭 | Kim Yu-chang |
이칭/별칭 | 김완(金莞),김자진(金子進),김창하(金昌河)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명근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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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김유창 일본 이주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김유창 일본적색구원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36년 - 김유창 노농무산협의회 집행위원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김유창 체포 및 집행유예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김유창 건달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 김유창 무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
추모 시기/일시 | 2009년![]() |
출생지 | 김유창 출생지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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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김유창 이주지 - 일본 도쿄[東京] |
활동지 | 김유창 활동지 - 일본 도쿄[東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건달회 서기부 |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유창(金瑬昌)[1900~1945]은 일본으로 건너가 비밀결사단체인 건달회(建達會)에서 활동하였다.
김유창은 1900년 3월 27일 지금의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서 출생하였으며, 김완(金莞)·김자진(金子進)·김창하(金昌河)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김유창은 1922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7년에 관동자유노동자조합(關東自由勞動者組合)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1931년 4월경 사회주의자 임일수(林一秀) 등의 권유로 일본적색구원회(日本赤色救援會)에 가입하여 동경지부(東京支部) 성서지구(城西地區) 낙합반(落合班)에서 활동하였다. 1936년 8월경 노농무산협의회(勞農無産協議會) 중야지부(中野支部) 집행위원으로 활동 중 1937년 9월 체포되어 기소유예를 받았다.
김유창은 1941년 6월 일본의 궁성 이중교(二重橋) 및 중앙 관청 등의 폭파를 계획하고 있던 비밀결사단체인 건달회에 가입하였다. 건달회는 무정부주의자 문성훈(文成勳)·이종문(李宗文) 등이 중심이 된 단체로, 김유창은 문성훈의 권유로 가입하여 서기부를 담당하였다. 이후 이들과 수차례 회합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협의하다가 체포되었다. 김유창은 일본 경시청에 체포된 후 소위 「치안유지법」 및 「폭발물취체벌칙」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다가 동경형사지방재판소에서 1944년 9월 30일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김유창은 2009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