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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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薿 |
영어공식명칭 | Lee Eok |
이칭/별칭 | 신지(信之),퇴은(退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광우 |
활동 시기/일시 | 1388년 - 이억 요동 공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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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이억 밀직부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이억 도평의사사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이억 개국원종공신 1등 녹훈 |
거주|이주지 | 이억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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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활동지 | 이억 부임지 - 평안북도 강계군 |
묘소|단소 | 이억 묘소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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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우계(羽溪) |
대표 관직 | 강계원수|도평의사사사 |
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이억(李薿)[?~?]은 고려 말 강계원수로 있으면서 요동지방을 공략하였으며, 조선 개창 후에는 개국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이억의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신지(信之), 호는 퇴은(退隱)이다. 아버지는 중추원사를 지낸 이사성(李思誠), 어머니는 요동도지휘사를 지낸 남성로(南星老)의 딸 영양남씨(英陽南氏), 할아버지는 영동정을 지낸 이백경(李伯卿), 증조할아버지는 예빈경을 지낸 이구(李球)이다. 부인은 판삼사좌윤을 지낸 안영부(安永孚)의 딸 정부인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이억이 만년에 처가가 있는 순흥부 지역으로 낙향하게 되면서, 우계이씨 가문이 영주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
이억은 고려 공민왕 연간 문과에 급제하였다. 1388년(우왕 14) 강계원수로 있으면서 이성원수 홍인계(洪仁桂)[?~1390]와 함께 요동으로 들어가서 적들을 물리치고 돌아왔다. 이에 우왕이 금정아(金頂兒)와 무늬 있는 비단을 하사하였다.
이억은 1392년(태조 1) 밀직부사에 제수되었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된 직후에는 도평의사사사에 올랐다. 또 1393년에는 전라도로 파견되어 군사를 점검하였다. 그러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처가가 있는 경상도 순흥부 구고(九皐)[지금의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로 내려와 만년을 보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소백산의 한 봉우리에 올라 개성을 향해 절을 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이억이 오른 봉우리를 국망봉(國望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억의 묘소는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회석(檜石)에 있다.
이억은 1392년 음력 10월 개국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어 노비와 토지를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