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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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漢陽趙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박선미 |
본관 | 한양 - 서울특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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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미암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
성씨 시조 | 조지수 |
입향 시조 | 조광재 |
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광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趙氏)는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인하여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당하자 후손인 조광재가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지종 마을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영암에 정착하였다.
시조인 조지수(趙之壽)는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이다. 그러나 언제 귀화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고려 때에 명종·신종·희종·강종 등 4왕조에 걸쳐 벼슬을 하였으며, 조순대부 첨의중서사(朝順大夫僉議中書事)에 이르렀다. 그 후 후손들이 조선 개국 후에 한양[현 서울특별시]으로 옮겨 가세(家勢)를 크게 번창시켰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어 가문을 빛냈다. 그래서 후손들이 한양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8년에 발간한 『마을 유래지』에 따르면 조광재가 1500년경에 현재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지종 마을에 내려와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묘사화 때 조광조가 화를 당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입향 시기는 기묘사화 이후로 볼 수 있다.
1998년에 발간한 『영암군지』에 따르면 영암 지역에 153가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