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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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葆光祠 |
영어공식명칭 | Bogwangsa Shrine |
이칭/별칭 | 보광서원(葆光書院)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40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호석 |
건립 시기/일시 | 17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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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9년 - 보광사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1년 - 보광사 보광서원으로 복원 |
현 소재지 | 보광서원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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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보광사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406 |
성격 | 사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사당.
1545년(인종 2)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고 현재 보광사가 있는 곳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한 유학자 이언복(李彦福)을 주벽으로 하면서 육대춘(陸大春), 이지성(李至誠), 이지도(李至道), 양몽설(梁夢說), 김준업(金峻業), 유정(柳頲), 이후태(李后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지성과 이지도는 이언복의 아들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신리교차로에서 순창, 정읍 방면으로 호남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태봉교차로에서 난산평촌로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가다 보면 길가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보광서원이 있다.
보광사는 1720년(숙종 46)에 창건되었으나 1869년(고종 6)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조치에 의해 훼철되었다. 현재 건물은 1971년에 복원한 것이다. 이때 ‘보광서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보광서원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팔작지붕 구조로 되어 있다.
사당인 보광사와 강당, 부속건물 1동, 비 1기가 있다. 보광사비에는 이도형(李道衡)이 지은 글이 새겨져 있다.
서원과 사우의 건립과 훼철, 중건의 역사를 통해 유교사상의 영향 아래 선조와 선현을 숭배했던 조선조 향촌사회의 성격은 물론, 유교의 폐단이 두드러지게 표출되었던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전라북도 완주군의 연안이씨 문중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