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600
한자 木家具[蘇秉辰]
영어공식명칭 Mokgagu(So Byeong-jin)
이칭/별칭 소목장(小木匠),소병진(蘇秉辰)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4년 9월 16일연표보기 - 소병진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무형문화재 소목장 기능보유자.

[개설]

소병진은 1992년 10월에 대한민국 명장회 가구제작 제1호 명장이 되었고 2013년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부이사장이 되었으며 2014년 9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의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목장]

소목장은 건물의 창호, 목기, 목가구[장롱·궤·경대·책상·문갑 등]를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기록상으로 보면 목수는 신라 때부터 있었고,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을 위한 목가구가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어 자급자족에 따른 지역적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가계 및 전승]

소병진은 1952년에 완주군 용진면에서 조선 헌종 때 선공감(繕工監) 가감역(假監役)을 지낸 증조부 소석규,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장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14세 때부터 전주에서 김석환, 이해민에게, 그 후 서울에서 강대규, 김종수에게 전통 소목장 기술을 사사받았다. 고향 완주는 전주를 포함해서 ‘완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많이 살았고 만경평야 등 넓은 평야의 지리적 환경에 의한 큰 부자가 살고 있었기에 목가구의 수요가 많았다. 그에 따라 가구공예가 발달해서 전주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문중 어른이 당시의 용진면 대목수였고 집안의 형제는 소목장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소병진은 자연스럽게 목가구의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가문의 일이 그의 천직이 되었다. 따라서 소병진은 그동안 잊혀진 전주장의 제작 기술을 알기 위한 노력에 전력을 다했고 그로 인해 전주장의 맥을 다시 이을 수 있게 되었다.

[기술내용]

전주장의 특징은 목가구 앞면의 화장판과 뒷면의 오동판 사이에 한지를 배접하는 적층기법을 사용했고 앞면과 뒷면을 몸통과 결합하는 방법은 구조상 튼튼하게 하기 위해 거멀장석[여러 부분을 잇거나 벌어진 사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감아쥐는 쇠]과 광두정[머리가 넓은 못]을 양쪽 기둥에 촘촘히 박아 두어 제작에 견고성을 강조했다. 또한 태극문과 길상문양의 상감기법은 전주장에서만 돋보이는 제작방법이고 장과 문갑의 결합, 장과 반닫이의 결합구조도 전주장만의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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