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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조현범이 순천 지역의 인물, 역사, 지리, 풍속 등을 노래한 책. 『강남악부』는 순천 지역의 역사서이면서 풍속지라 할 수 있다. 『강남악부(江南樂府)』의 ‘강남’은 당시 순천 승주[현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일대]의 별칭이다. 조현범(趙顯範)[1716~1790]은 순천 지역 선조들의 선행(善行)을 잊지 않고, 오래 전승하고자 『강남악부』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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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지역을 대표하는 의로운 여성. 정확한 생몰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강씨녀는 성만 알려져 있고, 어느 집안의 딸인지 알 수 없다. 순천 지역의 논개라고 일컬어지는 의로운 여성이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순천 지역에 왜성을 짓고 조명연합군에게 끝까지 저항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순천의 민심을 얻기 위해 약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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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의 작자 미상 유일본(唯一本) 고소설. 「기연회봉록」에는 표지에 ‘奇緣回逢錄긔연회봉록’이라는 제목이 기술되어 있다. 내지에는 ‘류봉샹전’이라는 별도의 소제목이 적혀 있다. 「기연회봉록」은 총 13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글자 수는 약 4만여 자이다. 본문은 1장에 가로 12~13행, 21~30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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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순천 출신의 무관. 김대인(金大仁)의 본관은 김해(金海), 시호는 충숙(忠肅)이고, 순천부 별량면[현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에서 출생하였다. 김대인에 관련된 기록이 부족하여 정확한 생몰연대와 가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6세기를 전후하여 활동하였다. 김대인은 조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에는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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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서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낙민루는 순천 낙안읍성 동헌과 내아(內衙)로 들어가는 외삼문 누각이다. 명칭은 맹자가 “백성과 함께 즐긴다.”라고 한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유래하였다. 1987년 1월 복원 당시 금둔사(金芚寺) 승려 지허(指虛)가 지은 상량문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낙민루의 주소는 순천시 낙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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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경에 편찬된 전라도 낙안군의 읍지. 『낙안읍지(樂安邑誌)』는 1757~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하여 간행된 읍지이지만 그 내용이 12면으로 매우 소략하여 당시 간략하게 읍지를 소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낙안읍지』는 조선 영조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필사본 『낙안읍지』 1책과 1899년 보성군수 서옥순(徐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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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순천 낙안읍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낙풍루는 순천 낙안읍성 동문 문루이다. 낙풍루는 물산이 풍족한 즐거움을 뜻하며,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서 오봉산에 뜨는 달의 밝기를 보고 일 년 농사의 길흉을 점치며 풍년을 기원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 듯하다. 낙풍루는 순천 낙안읍성 동문 밖 큰길과 이어져 있고, 가까이 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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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의 몽유록계 고전소설 유일본 작품. 「당백암(唐白菴)」은 몽유록 양식의 영향 아래 특정 인물이나 사안에 대해 세상의 평가에 공감하거나, 다른 견해를 제시하기 위해 창작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주인공의 기질과 산수유람, 선계 이인(異人)과의 만남, 이인[‘건문제’와 ‘정제’]과의 대화 및 유람, 복명 후 문연각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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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만낙정은 조유원(趙維元)이 현 순천시 황전면 선변리 선천(仙川) 가에 지은 누정이다. 누정명은 명리를 벗어나 산수를 즐기며 안빈낙도와 의리를 따르는 즐거움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아 지은 것이다. 조유원의 호는 선천(仙川), 본관은 옥천(玉川)이다. 우암 송시열에게 수학하였고, 16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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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하사리 앵무산 중턱에 있었던 조선 후기 정자 망성암(望聖庵)은 양신용이 병자호란 이후 관료이자 신하로서 국난에 보탬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국권회복을 기원하기 위해 앵무산(鸚鵡山) 속에 지은 누정이다. 그래서 ‘망성’에는 죄인의 심정으로 성상(聖上)[임금]을 멀리서 바라본다는 뜻이 들어 있다. 양신용은 망성암 곁의 대에서 매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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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명승 문화재. 명승은 「문화재보호법」의 문화재 정의 가운데 기념물에 해당하고 지정문화재 종별로는 국가지정문화재에 해당한다. 기념물은 절터 등의 사적지, 경치 좋은 곳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것, 지형이나 지질 등 자연현상으로서 역사적·경관적 또는 학술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순천시에는 순천만, 순천 초연정 원림, 조계산 송광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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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서평리 서정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충의공(忠毅公) 장윤(張潤)[1552~1593]의 네 아들 참봉 장홍도(張弘道)·호조참판에 추증된 장홍적(張弘迪)·첨지중추부사 장홍경(張弘慶)·장악원정 장홍민(張弘敏)이 부친 장윤의 유업을 기리며 우애 있게 지내기 위해 지은 누정이다. 사휴정이 세워진 곳은 장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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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이수로 둘러싸인 전라남도 순천시 중심부의 문화적 특색과 의미. 순천 사람들은 예로부터 순천을 ‘소강남(小江南)’이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이라고 자부해왔다. 물론 순천 사람들만 순천을 ‘소강남’이라 부른 것은 아니고, 그 명칭이 최근 생긴 것도 아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미, “산과 물이 기이(奇異)하고 고와 세상에서 소강남이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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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출신으로 선암사 화엄대회의 설주가 되었던 승려. 새봉(璽篈)[1687~1767]은 순천 출신으로 18세기 선교도총섭을 역임했던 고승이다. 속성은 손씨(孫氏), 자는 혼원(混元), 법호는 상월(霜月)이다. 새봉은 11세 때인 1697년(숙종 23)에 선암사의 극준(極俊) 장로(長老)에게 출가하고, 15세 때인 1701년에 세진(洗塵) 문신(文信)에게 구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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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송광사와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승려. 선수(善修)[1543~1615]는 전라도 오수[현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김적산(金積山)이고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며, 법호는 부휴(浮休)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께 “부질없는 세상이 매우 어두우니 저는 출가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하더니, 마침내 지리산으로 가서 승려 신명(信明)에게 출가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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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조선 후기에 들어와 불교가 부흥하면서 전국 사찰들을 중심으로 많은 동종이 조성되면서 다양한 양식이 제작되었다. 선암사 가경 8년명 동종은 주조 기법과 양식 등이 간략화되어가는 시기인 1803년 4월에 주조된 것이다. 처음에는 선암사 오십전(五十殿)에 있었는데, 어느 시기에 설선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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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순천 선암사는 조선 후기 조계산 일원의 중요 사찰로 법등이 지속하면서 많은 동종이 제작 활용되었다. 선암사 건륭 2년명 동종은 크게 유연한 곡선형을 이룬 종신과 역동적인 용뉴(龍鈕)로 구성되어 있다. 종신 상부에 약간 볼록한 형태로 천판(天板)을 마련하였으며, 한가운데 두 마리의 용이 앞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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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불교가 전래한 이후 불교 의식과 공양 등을 위하여 많은 동종이 제작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고려시대와 조선 후기에 상당량의 동종들이 전국 사찰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조선 후기에 불교가 부흥하면서 전라남도의 여러 사찰에서도 다수의 동종이 주조되었다. 선암사 옹정 8년명 동종의 전체적인 외형은 완만한 곡선형을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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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순천 선암사 운수암은 선암사 북동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1㎞가량 오르면 나타나는 암자이다. 운수암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가장 빠른 기록으로는 1644년 탄해(坦海) 비구에 의해 목조관음보살 좌상이 조성되었다는 보살상의 대좌 묵서여서, 17세기 중반에는 암자가 존재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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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출신의 무관. 성윤문(成允文)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노(廷老)이고 호는 만휴(晩休)이다. 아버지는 판서 성효원(成效元)으로 순천 해촌에 살았다. 성윤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생몰연대 및 자세한 가계는 알 수 없다. 성윤문은 1591년(선조 24) 갑산부사로 부임하여 재직 중,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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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출신의 의병. 성응지(成應祉)[?~1594]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순천 출신이다. 성응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생몰연대 및 자세한 가계는 알 수 없다. 성응지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순천향교의 유생 신분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전라좌수영에 자원 종군하여 이순신(李舜臣)[1545~1598] 수군절도사의 휘하에 들어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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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송광사에서 활동했던 승려. 성총(性聰)[1631~1700]은 남원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강(李棡)이고 어머니는 하씨(河氏)이며, 법호는 백암(栢庵)이다. 부휴계의 적전(嫡傳)[정통(正統)에서 정통(正統)으로 전함]으로서 징광사에서 다량의 불서를 간행했던 고승이다. 성총은 13세인 1643년(인조 21)에 출가하고 3년 후 비구계(比丘戒)[비구가 받아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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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고승 부휴대사의 승탑 송광사 부휴대사 탑은 부휴(浮休) 선수(善修)[1543~1615]의 승탑으로 1609년(광해군 원년) 순천 송광사로 주석처를 옮기면서 400여 명의 제자를 이끌고 와서 적격자를 뽑아 대규모로 순천 송광사를 중창했다. 이에 순천 송광사가 대찰로 거듭나면서 송광사 부휴대사 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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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불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송광사 불조전은 송광사 주 사역의 남쪽 개울 건너편에 있으며, 화엄전과 짝을 이루어 북면하여 자리 잡고 있다. 송광사 불조전 내부에는 주벽[남벽] 불단 중앙에 봉안된 석가, 비로, 노사나불의 석조삼신불좌상을 중심으로 주벽의 좌우와 좌우 측벽[동서벽]에 걸쳐 53불이 봉안되어 있다. 주벽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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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영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상. 송광사 영산전은 순천 송광사에서 약사전과 함께 가장 작은 법당 중 하나이다. 송광사 영산전은 1793년(정조 17)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다포식의 팔작집이다. 송광사 영산전 목조석가모니불좌상은 앞으로 숙인 자세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하체보다 상체가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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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 세워진 고승 벽암대사의 승탑. 벽암대사(碧巖大師)[1575~1660]는 순천 송광사에서 머물며 부휴(浮休) 선수(善修)[1543~1615]의 법맥을 이은 직계제자여서, 스승인 송광사 부휴대사 탑 바로 아래쪽에 벽암대사의 승탑을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송광사 원조벽암대사 탑은 하단면석에 단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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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순천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 세워진 고승 융묘대사의 승탑. 융묘대사(融妙大師)는 부휴(浮休) 선수(善修)[1543~1615]의 제자로 1621년(광해군 13)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기」와 1628년(인조 6) 소조사천왕상 중수 시 증명법사로 기록되어 있어 17세기 초반에 순천 송광사에서 활동했던 고승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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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송광사는 조선 후기에도 순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찰로 조계산 일대에 많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작은 암자였던 천자암은 불교 의식이나 공양을 위하여 1785년(정조 9) 2월 동종을 주조하였으며, 어느 시기에 송광사 경내로 이전하였다. 송광사 천자암 건륭 을사명 동종의 전체적인 형태는 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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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탑전 북편에 있는 조선 후기 건립한 부도군. 조선 후기에는 사찰의 입구나 특정한 지역의 일정한 공간에 법맥이나 사제관계 등에 따라 부도를 건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송광사 탑전 부도군도 송광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승려들로 조선 후기에 건립된 6기의 부도가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송광사 탑전 부도군의 부도들은 조선 후기 성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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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의 비석. 송광사보조국사비는 왕명에 의하여 김군수(金君綏)가 1210년(희종 6) 공주지사(公州知事) 재임 시에 비문을 짓고, 1213년(강종 2) 4월 조사당 앞에 초건(初建)되었다. 정유재란으로 비신과 이수가 파괴되자 1678년(숙종 4) 10월 귀부를 재활용하여 백암(栢庵) 성총(性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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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기와 가마터. 송광사 흑토기·와·전 도요지(松廣寺黑土器瓦塼陶窯址)는 순천 송광사가 조선 후기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하면서 운영하였다. 송광사 흑토기·와·전 도요지는 순천 송광사 경내 후원의 화엄전 남쪽 350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분포되어 있다. 송광사 흑토기·와·전 도요지는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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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읍성으로 석축성이다. 읍성은 치소의 기능과 함께 주민들이 거주하고 유사시 외곽 주민들의 입보처(入保處) 기능을 하였던 곳이다. 순천 낙안읍성도 내부에 행정 군사 시설 등과 함께 민가가 들어서 있다. 조선 전기 유학자인 이석형(李石亨)[1415~1477]의 기문에 따르면 낙안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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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문길리 재경골에 있는 조선 후기의 백자 가마터. 순천 문길리 백자도요지는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문길리 재경골 일대 작은 골짜기 세 곳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해발 130~140m 내외의 야트막한 경사면에 분포한다. 순천 문길리 백자도요지는 골프장을 조성하면서 발굴조사를 하여 백자 가마 3기와 폐기장 3곳, 수비공 등의 공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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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한국에는 불교가 전래한 이후 불교 의식이나 중생을 제도할 목적으로 많은 동종이 조성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동종들은 신라시대 주조된 동종들도 많이 있지만, 상당수가 고려시대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와 불교가 다시 부흥하면서 순천 지역의 여러 사찰에도 많은 동종이 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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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현재 남아있는 동종들은 신라시대 주조된 동종들도 많이 있지만, 상당수가 고려시대와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불교가 부흥하면서 순천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지역에서 다수의 동종이 제작되었다. 순천 선암사 순치14년명 동종은 전라남도 보성군에 있는 대원사 부도암에서 처음 주조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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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 감로암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순천 송광사 광원암은 최근까지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발견된 상량기에 514년(무령왕 14) 6월 승려 가규(可規)가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무령왕 때 창건설은 이를 증명할 유적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아 좀 더 검토가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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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순천 송광사 천왕문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세조 연간에 처음으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정유재란으로 훼손된 천왕문과 사천왕상은 1609년(광해군 1)에 천왕문이 중수되고, 1628년(인조6)에 수화사 응원(應圓)을 중심으로 고한(高閑), 석호(釋湖), 법해(法海), 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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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순천 송광사 영산전은 순천시 송광면 순천 송광사 안에 있다. 순천 송광사 영산전은 대웅전 앞 넓은 마당인 중정의 모퉁이에 순천 송광사 약사전과 나란히 서 있다. 순천 송광사 영산전은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순천 송광사 스님들 대다수가 승병으로 참전했을 때 불이나 무운료, 해청당,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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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이후 편찬된 전라도 순천부의 읍지. 『순천부읍지』는 정확한 간행 연도를 알 수 없지만, 내용 분석을 통하여 1876년(고종 13) 이후에 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1618년(광해군 10) 이수광이 간행한 『승평지(昇平志)』에 이어 1729년(영조 5) 홍중징이 간행한 『신증승평지(新增昇平志)』의 내용이 당시의 순천부의 상황을 제대로 번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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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의 판소리계 소설 이본. 2011년 11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자 겸 편집자였던 한창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의 유족들과 전라남도 순천시가 힘을 모아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세웠다.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는 한창기가 형생 수집했던 국보급 문화재와 민속자료, 한글 관련 자료 및 전적(典籍) 등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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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의 한글 고소설.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자 겸 편집자였던 한창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창기의 유족들과 순천시가 힘을 모아 2011년 11월에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세웠다.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는 한창기가 평생 수집했던 국보급 문화재와 민속자료, 한글 관련 자료 및 전적(典籍) 등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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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총 93종 318책의 한문문집. 2011년 11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의 발행자 겸 편집자였던 한창기의 업적을 기리고, 한창기가 평생 수집했던 국보급 문화재와 민속자료, 한글 관련 자료 및 전적(田籍) 등을 보전·전시하기 위하여 한창기의 유족들과 순천시가 힘을 모아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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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저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의병장인 장윤의 사액 사우. 장윤(張潤)[1552~1593]은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던 중 부친의 병환으로 낙향했다가 사천현감으로 복직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라좌의병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1593년 6월 진주성을 다시 공격하자 이를 사수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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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석현동 향림사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순천 향림사 동종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석현동에 있는 향림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원래는 순천 선적사(順天 善積寺)에서 여러 사람이 시주하여 1746년 4월에 주조되었으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시기에 향림사로 이전된 동종이다. 순천 향림사 동종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전체적인 형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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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에 이수광이 편찬한 전라도 순천부의 읍지. 이수광은 『승평지』 끝에 편찬 의도와 방법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수광은 순천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 뿐이고 그마저도 소략한 것을 아쉬워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자신이 직접 순천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관찰하며 『동국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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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선암사를 중창한 순천 출신의 승려. 약휴(若休)[1664~1738]는 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국의 승풍(僧風)을 바로 잡았던 고승으로 법호는 호암(護巖)이다. 순천 쌍암면 죽림동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에 추증된 오응신(吳應信)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약휴는 12세인 1675년(숙종 원년) 선암사 승려 경준(敬俊)에게 출가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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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거주했던 유학자이자 무관. 양신용(梁信容)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경중(景仲), 호는 장춘(長春)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학포 양팽손(梁彭孫)[1488~1545]이다. 양신용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양신용은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에 올랐다. 인조 때에 인동부사(仁同府使)에 제수되었고 경주영장(慶州營將)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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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궁각리 마전마을 영귀동네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누정. 영귀정(詠歸亭)은 ‘영귀당(詠歸堂)’으로도 일컫는데, 삼탄(三灘) 조대춘(趙大春)의 6대손 조태망(趙泰望)이 1700년대 초기에 지은 누정이다. 조태망의 자는 위수(渭叟)이다. 영귀정 명칭은 『논어』「선진(先進)」에 증점(曾點)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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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월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정. 영모정(永慕亭)은 남현(南顯)[1547~1586]의 효행을 기리며 영세토록 사모하고 잊지 않기 위해 남현의 후손들이 재실(齋室)의 용도로 지은 누정이다. 또한, 남현이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고 선영 아래에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감회를 담아 지은 모정(慕亭)을 잇는 것이기도 하다. 정자의 주인 남현의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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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소장의 경판본 고소설 「월왕전」 판목. 현재 남아 있는 경판본 고소설 「월왕전」은 3권 3책에 상 20장, 중 24장, 하 19장으로 구성된 ‘63장본’이다. ‘63장본’은 2권 2책 형태의 ‘64장본’ 책판을 적절히 분권하여 만들었다. 이 중 '63장본'의 하 19장을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경판본 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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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에 참전한 순천 출신의 의병. 이기남(李奇男)의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대윤(大胤)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천근(李千根)이고, 아버지는 이사관(李思寬)이다. 할아버지인 이천근이 광주 지역에서 순천 지역으로 이거를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에 세거하였다. 이기남은 조선시대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후 관직이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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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출신의 의병. 이기준(李奇俊)의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극언(克彦)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이천근(李千根)이고, 아버지는 이사홍(李思弘)이다. 할아버지인 이천근이 광주에서 순천으로 이거를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에 세거하였다. 이기준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이기윤(李奇胤), 사촌형 이기남(李奇男)과 함께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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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부사를 역임한 문관.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이다. 이수광은 태종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 대까지 종실의 일원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선사정(仙槎正) 이승손(李承孫), 할아버지는 신당령(神堂令) 이정(李禎)이었다. 아버지 대부터 관직에 나갈 수 있어서 아버지 이희검(李希儉)[1516~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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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에 참여한 순천 출신의 의병. 이전(李荃)의 본관은 양성(陽城)이고, 자는 대윤(大胤)이다. 정절공(精節公) 이옥(李沃)[?~1409]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상호군 이양정(李養正)이다. 아버지는 사파진(蛇波鎭) 수군첨제사를 역임한 이윤종(李潤終)[1490~1551]이다. 1569년(선조 2) 광주 지역에서 순천 지역으로 이거 함으로써 대대로 순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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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지역에서 낙안군수를 역임한 문관. 임경업(林慶業)[1594~1646]의 본관은 여흥(驪興), 평택(平澤)이고,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다. 판서 임정(林整)[1356~1413]의 7대손이고, 아버지는 임황(林葟)이다. 출생지는 충주 달천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평안도 개천이라는 설도 있다. 임경업은 1618년(광해군 10) 아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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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순천 낙안읍성 안에 있는 조선시대 낙안군수 임경업의 선정비와 비각 임경업장군비각은 낙안군수를 지낸 임경업(林慶業)[1594~1646]이 이임(移任)한 직후인 1628년(인조 6) 4월에 세운 선정비와 비각이다. 임경업은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1626년(인조 4) 5월에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1628년(인조 6) 3월까지 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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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전라남도 순천 지역의 농민들이 수령과 향리들의 조세 수취의 부정 행위 등에 항거해 일으킨 농민항쟁. 세도정권기 삼정문란으로 표현되는 통치 질서의 이완과 문란으로 인해 농민들은 극한상황에 내몰렸다. 임계점에 달한 농민들의 분노는 1862년(철종 13) 한꺼번에 타올랐다. 1862년 2월 4일 경상도 단성에서 처음 일어난 농민항쟁은 1862년 5월까지 각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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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 당시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장윤(張潤)[1552~1593]의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명보(明甫). 아버지는 장응익(張應翼)이다. 장윤은 31세인 1582년(선조 15) 봄에 식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장윤이 처음으로 관로에 오른 것은 1583년 전라좌수영 관내의 발포진 수군만호였다. 그러나 1년 만에 수사와의 불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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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서평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충신 장윤을 위해 세워진 정려. 정려각에 배향된 장윤(張潤)[1552~1593]의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학봉(鶴峯), 본관은 목천(木川)이다. 순천부 쌍암면 학구정[현재의 순천시 승주읍 봉덕리 학구촌]에서 선전관 장응익(應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던 중 부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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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에서 활약한 순천 출신의 무관. 정사준(鄭思竣)[1553~?]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근초(勤初)이며, 호는 성은(城隱)이다. 아버지는 판관 정승복(鄭承復)[1520~1580]이고, 동생은 현감 정사횡(鄭思竑)[1563~1640]이다. 정사준의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며 장인은 현감 홍잠(洪潛)[1524~1589]이다. 순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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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에 참전한 순천 출신의 무관. 정사횡(鄭思竑)[1563~1640]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여인(汝仁)이며, 호는 매헌(梅軒)이다. 아버지는 판관 정승복(鄭承復)[1520~1580]이고, 형은 현감 정사준(鄭思竣)[1553~?]이다. 정사횡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제 및 조카들과 함께 힘을 합하여 의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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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출신으로 『강남악부』를 쓴 문인. 조현범(趙顯範)[1716~1790]의 본관은 옥천, 자는 성매(聖梅), 호는 삼효재(三效齋)이다. 고려 말 부정(副正)으로 지낸 조유(趙瑜)[1346~1428]가 12세조이다. 1716년(숙종 42) 순천부 주암면에서 태어났다. 조현범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할아버지 조송년(趙松年)은 학문이 출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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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사액서원. 순천 지역 유림의 논의로 1693년(숙종 19)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덕행과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순천부 서문 밖[난봉산 아래]에 이수광의 호를 따 지봉서원(芝峯書院)을 창건했다. 1727년(영조 3)에 조정으로부터 ‘청수(淸水)’라는 이름이 사액되었으며, 이응기(李應耆)[1594~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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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승려. 최눌(最訥)[1717~1790]은 전라도 고흥 출신의 부휴계(浮休系) 고승이다. 밀양박씨이고, 자는 이식(耳食), 법호는 묵암(默庵)이다. 최눌은 14세 때인 1730년(영조 6)에 징광사 득휘(得輝) 장로(長老)에게 출가하고, 18세 때인 1734년에 만리대사(萬里大師)에게 구족계(具足戒)[불교 교단의 승려가 받는 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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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선암사, 순천 송광사에서 승려로 있었던 침굉 현변이 남긴 문집. 침굉(枕肱) 현변(懸辯)[1616~1684]은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13세가 된 해 지리산 방장사에 머물던 소요(逍遙) 태능(太能)의 법을 이어받았다. 침굉 현변은 주로 선암사, 송광사, 연곡사 등에서 머물다가 전라남도 금화산 징광사에서 입적하였다. 침굉 현변은 주로 전라남도 지역의 사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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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선암사와 순천 송광사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승려. 한성(翰醒)[1801~1876]은 전라도 고흥 출신으로 선암사 대승암 강원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고승이다. 한성의 아버지는 통정대부 이혁(以爀)이고 어머니는 맹씨(孟氏)이며, 법호는 침명(枕溟)이다. 한성은 15세 때인 1815년(순조 15) 팔영산 능가사(楞伽寺)에 주석하던 숙부 권민(勸敏) 장로(長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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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 송광사와 순천 선암사에서 주석했던 승려. 현변(懸辯)[1616~1684]은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속성은 윤씨(尹氏)이고 자는 이눌(而訥)이다. 청허계 소요문파의 고승으로 법호는 침굉(枕肱)이다. 현변은 12세 때인 1627년(인조 5)에 출가하여 보광법사(葆光法師)를 따라 천풍산[현 천관산]에서 불경을 공부하였다. 13세 때인 1628년에 지리산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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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천부사를 역임한 문관. 황익재(黃翼再)[1682~1747]의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재수(再叟), 호는 백화재(白華齋)이다. 황희(黃喜)[1363~1452]의 10대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황집(黃緝), 할아버지는 황재윤(黃載胤)이다. 아버지는 증 좌승지 황진하(黃鎭夏)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 김진익(金震釴)의 딸이다. 부인은 청송심씨(靑松沈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