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316 |
---|---|
한자 | 南山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형성 |
건립 시기/일시 | 1800년![]() |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원소재지 | 남산 서원 원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 |
성격 | 서원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남산 서원(南山書院)에서 향사하던 권효(權曉)는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요일(堯日), 호는 만은(晩隱)으로 안동 권씨 17세손이며 길창 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1281~1352]의 4세손이다. 세종 때 벼슬이 사정(司正)에 이르렀고 1452년(단종 1) 수양 대군이 고명 사은사(誥命謝恩使)로 명나라에 갈 때 함께하였다. 그리고 좌익 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으로서 수양 대군이 영의정으로 명나라에 갈 때 수행하여 중국 사람들에게 학문으로 존중받았다. 단종이 손위(遜位)하고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원주로 숨었다가 다시 순창으로 은거하였다. 신숙주(申叔舟)의 아우 신말주(申末舟)[1429~1503]와 함께 교류하며 절의를 지켰다.
남산 서원은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가잠 마을에 있었다 하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남산 서원은 순창으로 은거한 충신 권효의 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안동 권씨(安東權氏) 문중과 향유들이 1800년(정조 24) 창건하였다. 1807년(순조 7) 권효의 위패를 봉안 향사하다가,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남산 서원은 훼철되어 형태를 알 수 없다.
순창의 유교 제례 의식과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복원되어 선현의 정신을 기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