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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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落霞亭遺稿 |
이칭/별칭 | 『낙하정집(落霞亭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손앵화 |
전라북도 순창 출신의 조선 후기 유학자 양시면의 문집.
양시면(楊時冕)[1585~1626]의 자는 자정(子整), 호는 낙하정(落霞亭)이며, 순창군 적성면(赤城面)구남(龜南)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병조 정랑을 지낸 양사형(楊士衡)이며, 어머니는 최영(崔嶺)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증광시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광해군 때 폐모론이 대두되자 낙향하여 생을 마쳤다. 1626년 6월 20일,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 김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낙하정집(落霞亭集)』은 오랫동안 필사본으로 전하던 원고를 후손들이 1851년(철종 2)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유집이다. 아버지 양사형(楊士衡)과 백형 구음양시진(楊時晉)의 문집을 합본하여 단권(單券)으로 간행되었다. 또 구음의 아들인 화양양여매(楊汝梅)의 유집 1책과 묶어 삼세유집(三世遺集)으로 간행되었다. 권수(卷首)에 종자(從子) 양여매(楊汝梅)의 서문이 실려 있다.
『낙하정 유고』는 양사형의 『어은집(漁隱集)』과 양시진의 『구음집(龜陰集)』이 합본되어 1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책장의 네 모서리 모두 한 줄로 되어 있는 테두리]으로 내향 삼엽 화문 어미(內向三葉花紋魚尾)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24.6×17.7㎝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1자이다. 전남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은 시(詩)와 만사(輓詞)가 있다. 시 중에 「병풍 팔영(屛風八咏)」은 춘하추동 사계절의 풍경을 담은 병풍 그림에 대한 제시(題詩)에 해당한다. 광해군이 영창 대군을 강화도로 유폐한 뒤 처형하고, 인목 대비 마저 폐위하려고 성균관에 연명 상소를 올리라고 강요하니 대부분의 관생들이 짐을 싸서 낙향하였다. 당시 성균관생이던 양시면도 「장안곡(長安曲)」이라는 시를 짓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수청오근액지(一樹靑梧近液池)[대액지 근처에 푸른 오동나무 있는데]
군아난집봉무지(群鴉亂集鳳無枝)[갈가마귀 떼지어 모여드니 봉황의 자리 없네]
색사하처위장왕(色斯何處爲長往)[놀란 봉황은 어느 곳으로 떠나갔을까]
해외도원세불지(海外桃源世不知)[바다 밖 무릉도원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네]”
또 「강남곡(江南曲)」은 당시의 혼란한 정국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시에서 자신과 같이 낙향한 선비를 원앙, 집권당인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파를 매, 뜻있는 원로대신을 고니에 비유하였다. 양시면의 묘지명은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현손 양응수(楊應秀)의 청을 받고 지었다.
양시면은 광해군 때 폐모론이 대두되자 순창에 내려와 적성강변에 낙하정(落霞亭)이라는 누정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이때 고향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광을 그려 만든 병풍그림에 읊은 제영시(題詠詩)가 「병풍팔영」이다. 그중 가을 그림을 보고 읊은 시는 다음과 같다.
금궐미형무(金闕迷炯霧)[궁궐은 희미하게 안개 속에서 빛나고]
주루은참암(朱樓隱巉巖)[붉은 누각은 가파른 낭떠러지를 가리우네]
하처사순객(何處思蓴客)[어느 곳을 생각하는가, 고향의 나그네여]
추풍호괘범(秋風好卦帆)[가을 바람은 돛 걸기에 좋구려]
탄금좌소정(彈琴坐小艇)[작은 배에 앉아 거문고 타고]
탁족농청파(濯足弄淸波)[맑은 물결 희롱하며 발을 씻네]
노화명월야(蘆花明月夜)[달빛에 갈대꽃은 밝게 빛나는데]
독작의여하(獨酌意如何)[홀로 술잔을 기울이려니 마음이 어떠한지]
『낙하정 유고』 가운데 「장안곡」은 권필(權鞸)이 유희분(柳希奮) 등 외척이 발호하는 당시 세태를 풍자하여 쓴 궁류시(宮柳詩)에 필적할 말한 작품이다. 「강남곡」 역시 다양한 새의 속성을 제재로 하여 권신의 횡포와 어지러운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있어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