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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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光佐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서홍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67년 - 정광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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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20년 - 정광좌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522년![]() |
현 소재지 | 정광좌 묘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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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묘비 |
관련 인물 | 정광좌(鄭光佐)[1467~1520] |
재질 | 화강암[대석]|대리석[비신·개석] |
크기(높이,너비,두께) | 비신 117㎝[높이]|54㎝[너비]|20㎝[두께] |
소유자 | 동래 정씨 종중 |
관리자 | 동래 정씨 종중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광좌의 묘비.
정광좌(鄭光佐)[1467~1520]는 본관이 동래(東萊)이며, 자(字)는 양경(良卿)이다. 할아버지는 내산 부원군 직제학공 정사(鄭賜)이고, 아버지는 좌리공신(佐理功臣) 동래군 정란종(鄭蘭宗)이다. 부인은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김극뉴(金克忸)의 딸이다. 종부시 주부·흥덕 현감·김제 군수·안산 군수 등을 지냈으며, 동래 정씨(東萊鄭氏) 안산공파의 파조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풍속으로 처가와 매우 밀접하였으며, 처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장인인 김극뉴의 묘소 아래에 묘를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묘비는 정광좌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에 세웠는데, 새로 건립한 비가 옆에 또 있다.
순창 읍내에서 전주 쪽으로 가는 길에 인계면이 있다. 인계면에서 우측으로 적성면을 향하다가 가성리 순창 수목원을 지나면 마흘리가 나온다. 마흘리 앞 도로변에서 좌측으로 뾰족하게 우뚝 솟은 용마산 아래 남쪽 방향 나지막한 곳에 김극뉴의 묘소가 있고, 그 아래에 정광좌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주소지는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번지이다.
비신(碑身)의 규모는 높이 117㎝, 너비 54㎝, 두께 20㎝이다. 화강암의 방형 대석(臺石)에 연꽃무늬를 새겼다. 비신과 개석(蓋石)을 한 돌로 조각하였으며, 비신과 개석의 재질은 대리석이다. 특히 개석의 연꽃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진 조선 전기의 묘비 양식이 잘 나타나는 석조물이다.
비의 전면에 ‘통훈대부 행안산 군수 정공 지묘(通訓大夫行安山郡守鄭公之墓)’, ‘숙인 광주 김씨 지묘(淑人光州金氏之墓)’라고 두 줄로 해서체로 새겼다. 좌우 측면에 각각 세로로 5행 34자와 후면에 세로로 16행 34자씩 해서체로 음기(陰記)를 새겼다. 비문을 지은 사람은 정광좌의 정광좌의 맏형 정광보의 아들 정사룡(鄭士龍)이며, 글씨를 쓴 사람은 성균 생원 진준(陳儁)이다.
묘비를 세운 지가 5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고, 비신이 마모가 쉬운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다 비각이 없이 비바람에 노출되어 마멸이 심하다. 현재 절반 정도의 글자는 판독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동래 정씨 문중에서 관리한다.
정광좌 묘비는 조선 전기의 양식을 매우 잘 보여 주는 석조물로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또한 풍수지리상 좋은 자리로 소문난 곳이며, 명망 있는 후손이 많이 태어나 답사객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