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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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圃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병호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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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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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법정리 |
면적 | 2.39㎢ |
가구수 | 203가구 |
인구[남/여] | 383명[남 178명/여 205명]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현포란 곤륜산의 서왕모 신선이 기거하는 곳이다. 따라서 옛사람들이 신선이 거주할 만한 명당이라 하여 현포리(玄圃里)로 부른 것 같다. 속설에 의하면 속칭 감밭이라 불린 이곳을 한자로 ‘감을 현(玄)’, ‘밭 포(圃)’ 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감밭’은 이곳이 감나무 산지여서 명명된 것이다. 또한 현(玄)은 ‘검을 현’ 자이지 ‘감을 현’ 자는 아니다.
조선 시대에는 남원부(南原府)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아동면을 영계면에 통합시켜 순창군에 귀속시키면서 동계면 현포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계면의 현무라 할 수 있는 사자봉(溮子埄)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려 온 산맥이 오동리 뒤에서 솟아 오른 자라봉[鶿山]을 주산으로 동계 고등학교 정문 앞부터 높이93m의 산맥이 흘러 동계 초등학교까지 내려온 마을이 감밭, 곧 현포리다. 동쪽으로 신촌, 서쪽으로 마상동을 합하여 현포리라 하였다. 마상동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몰미산 산록에 자리 잡고 있다. 신촌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동편으로 1,500m쯤 떨어진 동계천을 동출서류(東出西流)로 안고 길게 형성된 마을인데, 설탄보 도수로가 마을 앞으로 설치된 것으로 보아 약 300여 년 전에 생긴 마을로 추측된다. 연산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동북쪽으로 600m 떨어진 장태봉[일명 사다리봉]을 등지고 아늑한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현포 마을에는 동계 초등학교 뒤 높은 방천에 감밭 쪽으로 큰 마을이 있었다는 설화가 있다. 사통오달로 크게 터져 있어 ‘터전 골목’ 또는 ‘한 골목’이라 불렸다. 지금은 유실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고 기왓장 파편만이 발굴되고 있다. 마상동 마을은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과 무량산(無量山)의 줄기로서 마상동자형(馬上童子形)의 명당이 있다 하였다. 말의 구시[밥통] 자리가 된다 하여 마상굴이라 불렸다. 감굴사 터[寺址]가 있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분지로 형성되어 오랜 옛날부터 난세에 많은 사람이 피신하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 오른쪽 끝 굽들 남단 마을 앞에서 흘러간 도랑 끝 부근에 우뚝 솟은 큰 바위 굽들에서 황새 떼가 보금자리를 틀었다는 황새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마을 수호신으로 소중히 여겼다. 신촌 마을 동쪽으로 주월(舟月) 가는 길 옆 동계천 변에 큰 소(沼)가 있고, 용이 못 된 귀가 달린 큰 구렁이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는 비늘 바위가 있다. 연산 마을에는 선인들이 마을 한가운데 연못을 파고 연을 심었고, 둘레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정취를 더했으나 지금은 마을 광장으로 바뀌어 볼 수 없게 되었다.
2013년 12월 현재 현포리의 면적은 2.39㎢로 농경지는 79만 5,000㎡, 임야는 1.6㎢이다. 인구는 203가구, 383명으로 남자가 178명, 여자가 205명이다. 현포리는 현포 마을과 마상동 마을, 신촌 마을, 연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현포 마을의 감밭[玄圃] 시장은 오산의 맥이 내려 형성된 관계로 어느 성씨를 막론하고 입주, 정착하면 부를 성취한다고 전해진 탓에 항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특히 특산물인 밤은 전국 각지 상인들이 사 간다. 마상동 마을은 본래 10여 가구가 살았는데,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10여 가구가 늘어 25가구가 사는 성촌이 되었다. 신촌 마을은 뒤로 장태봉이 감싸고 동계천이 흘러 강 건너 포전밭과 현포 들판에 상목을 식재하여 잠업(蠶業)으로 소득을 높이고 있다. 신촌 징검다리는 동계면 주민은 물론 인근 주민들이 영동 방면과 전라북도 남원으로 통하는 중요 다리였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현대식 다리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