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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경기도 시흥시에 거주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731년(영조 7) 오노미(吳老味)가 김춘서(金春西)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인천부 황등천면 육리 내곡(內谷)[지금의 시흥시 계수동 일대]에 소재한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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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745년(영조 21) 이덕윤(李德潤)이 최두웅(崔斗雄)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금천현 남면 노온사리[지금의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50냥(兩)을 받고 매매하였다. 낱장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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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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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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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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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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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전답 매매권 위임 문서. 패자(牌子)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자신의 노비에게 매매권을 위임하기 위하여 작성해 준 문서로 패자(牌字), 패지(牌旨), 배자, 배지라고 한다. 1815년(순조 15)으로 추정되는 을해(乙亥)에 상전인 최일(崔一)이 노비 억만(億萬)에게 전답의 매매권을 위임하는 문서로 인천부 신고개면 삼리 한천동(寒泉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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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의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전답 매매권 위임 문서. 패자(牌子)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자신의 노비에게 매매권을 위임하기 위하여 작성해 준 문서로 패자(牌字), 패지(牌旨), 배자, 배지라고 한다. 1824년(순조 24)으로 추정되는 갑신(甲申)에 상전 윤(尹)이 노비 돌세(乭世)에게 전답의 매매권을 위임하는 문서로 인천부 신고개면 삼리 한천동(寒泉洞)[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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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36년(헌종 2) 이석로(李錫老)가 최종길(崔宗吉)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시흥현 남면 노온사리[지금의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30냥(兩)을 받고 매매하였다. 낱장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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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45년(헌종 11) 유성운(柳成云)이 임영장댁(任營將宅) 노비 춘쇠[奴春金]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인천부 황등천면 중림리[지금의 시흥시 과림동]에 있는 전답을 임영장댁 노비 춘쇠에게 매매하였다. 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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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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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53년(철종 4) 정동림(鄭東霖)이 이주황(李周璜)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광주군 월곡면 하초평리[지금의 의왕시 초평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11냥(兩)을 받고 매매하였다. 낱장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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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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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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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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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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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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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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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김정억이 작성한 민원 관계 문서. 발괄[白活]은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관청에 올리는 청원서나 진정서를 뜻한다. 발괄은 순우리말의 이두식(吏讀式) 표기법이다. 조선 후기 안산군 초현면 고곡리에 거주하는 김정억(金正億)의 당질 김판종(金判宗) 가족이 모두 괴질로 사망한 후, 초현면 고자리에 거주하는 백심술(白心術)이 김판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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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 준호구 12점 중 하나로 관청에서 호적 사항을 증명 받은 문서. 준호구(準戶口)는 관청에서 호구 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이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151 양희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기(李相夔)의 13세손 이석우(李錫雨)의 집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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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었던 조선시대 안산군 관아에서 연지기의 면역을 재확인해 주기 위해 발급한 증명서. 완문(完文)은 관청에서 공증해 주는 문서로서 주로 사실 확인이나 권리 인정 등을 위한 일종의 확인서이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이 경기도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208]에 조성한 연못으로 1986년 3월 3일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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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었던 조선시대 안산군의 군수가 경기도관찰사에 올린 원장의 첨부 문서. 서목(書目)은 하관이 상관에게 올리는 보고서인 원장(原狀)[보첩 등]에 첨부되는 문서로서 주로 원장(原狀)의 요지로 되어 있다. 대체로 상관의 처분 후에 원장은 상관이 보관하고, 서목은 하관에게 되돌려주었다. 작성자는 권용정(權用正)[1801~1861]이다. 관곡지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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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이었던 조선시대 안산군 내 관곡지 준설에 관하여 권씨 가문에 전해지는 문서. 「연지준지기(蓮池浚池記)」는1900년(대한제국 광무 4) 5월 관곡지(官谷池) 준설에 관한 사안을 자손들이 알 수 있도록 권태선(權泰善)이 기록한 것이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이 경기도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208]에 조성한 연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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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년(성종 24)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하여 경기도 수군의 폐단에 대하여 문신 황계옥이 올린 상소문. 차자(箚子)란 간단한 상소문을 뜻한다. 「황계옥 차자」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사헌부 정4품 벼슬인 장령(掌令) 황계옥(黃啓沃)이 1493년(성종 24) 지금의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 지면(地面) 수군의 폐단에 대하여 올린 것이다. 황계옥은 장령의 직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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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가 속해 있던 조선시대 안산군 초산면에서 결성된 권농사에 관한 기록. 1891년(고종 28) 경기도 안산군 초산면[지금의 시흥시 목감동·연성동 일대] 주민들이 재결성한 ‘권농사(勸農司)’라는 조직을 기록한 것으로 농업 장려, 권농사 구성원, 권농사 연보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성자는 권용세(權用世), 이항진(李恒鎭), 이순영(李淳榮) 등 권농사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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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가 속해 있던 조선시대 안산군 부재지주 농장의 수입과 지출에 관련된 기록. 『안산 추수기(安山秋收記)』의 작성자는 조선시대 후기에 살았던 이동식(李東植)이다. 조선 후기 안산군의 마름[차지(次知)] 이동식이 부재지주(不在地主)를 대신하여 중간 관리자로서 안산농장을 경영하였다. 이동식이 1867년(고종 4) 작성한『안산 추수기』에는 곡식 추수 시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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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인 조선시대 안산군의 군수가 관곡지를 재정비하고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문서. 『연지사적(蓮池事蹟)』은 1846년(헌종 12) 안산군수 권용정(權用正)이 관곡지를 재정비하고 이러한 사항을 기록한 필사본 성책 고문서[여러 장의 문서를 책의 형태로 엮은 고문서]이다. 관곡지의 유래와 재정비 및 관리를 위한 연지기 배치 등에 대한 사항이 상세히 기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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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에 거주한 정제두가 죽음을 예견하고 자녀에게 남긴 교훈집. 정제두(鄭齊斗)[1646~1736]는 자신의 학술 종지(宗旨)가 양명학에 있음을 『임술유교(壬戌遺敎)』에 천명(闡明)하였다. 『임술유교』는 『하곡집(荷谷集)』 22책본 중 정집(正集)에 속하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22책본에는 결여되어 있는 것이지만, 다른 서울대학교 소장본 11책본 등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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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거주하던 정제두가 우리나라 양명학의 체계에 관해 저술한 책. 『존언』은 정제두(鄭齊斗)[1646~1736]의 문집 『하곡집(荷谷集)』 22책본 중 정집(正集) 권9에 해당한다. 『학변』이 주일적(主一的) 심성학을 바탕으로 물리(物理)의 학(學)을 비판한 것이라면 『존언』은 체계적으로 심성학을 정리한 저술이다.『하곡집』 22책본은 제1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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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거주하던 정제두가 저술한 『하곡집』 22책본 중 정집 권8에 해당하는 양명학 논변서. 『학변(學辨)』은 경기도 안산군 잉화면 화정리[지금의 시흥시 화정동]에 거주하던 정제두(鄭齊斗)[1646~1736]가 저술한 『하곡집(荷谷集)』 22책본 중 정집(正集)에 속하며 정주학(程朱學)의 지리하고 번잡한 학문 태도를 비판한 양명학 논변(論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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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7년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지금의 시흥을 경유해 화성 현륭원으로 간 행행.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부친 사도세자의 추존(追尊)을 위해 노력하였다. 1789년(정조 13) 사도세자 묘를 수원으로 이장해 현륭원(顯隆園)을 만들고 화성(華城)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11년간 총 13번의 원행(園幸)을 하였는데, 이 중 10차 원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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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양명학을 발전시킨 추곡(楸谷) 정제두(鄭齊斗)[1649~1736]는 20년간 안산군 인화면 화정리[지금의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마을에 거주하면서 실심실학(實心實學)의 체계를 세우고 학문에 정진하여 한국 사상사에 심학(心學)의 뿌리를 내렸다. 홀로 있을 때일수록 생각을 방종하지 않게 삼가 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친절하게 해야 하며 상황에 따른 권도(權道)의 유연성을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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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강귀손의 묘. 강귀손(姜龜孫)[1450~1505] 묘는 진주 강씨(晉州姜氏) 문량공파(文良公派) 묘역에 있으며 부인과 함께 쌍분(雙墳)으로 조성되어 있다. 강귀손의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좌찬성(左贊成) 강희맹(姜希孟), 어머니는 관찰사(觀察使) 안숭효(安崇孝)의 딸이다. 1479년(성종 10) 별시 문과에 병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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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강극성의 묘. 강극성(姜克誠)[1526~1576] 묘는 진주 강씨(晉州姜氏) 문량공파(文良公派) 묘역에 있는 단분(單墳)이다. 강극성의 본관은 진주, 좌찬성(左贊成) 강희맹(姜希孟)의 4대손으로 아버지는 사용(司勇) 강복(姜復), 어머니는 의정부좌참찬 김안국(金安國)의 딸이다. 1553년(명종 8) 별시 문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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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관곡지에 연꽃을 심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운송거사(雲松居士), 국오(菊塢), 만송강(萬松岡).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증조할아버지는 강시(姜蓍), 할아버지는 동북면 순무사(東北面巡撫使) 강회백(姜淮伯), 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沈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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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 묘와 신도비.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시·서·화 삼절(三絶)로 유명한 인수부윤(仁壽府尹) 강희안(姜希顏)이 형이다. 1447년(세종 29) 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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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안의 묘. 강희안(姜希顔)[1417~1464]의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고, 동생은 좌찬성(左贊成) 강희맹(姜希孟)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式年) 문과에 급제하였고, 1443년(세종 25) 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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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일원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 두 곳이 발견되어 보고되었다. 기전문화재연구원[지금의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2000년 발간한 지표 조사 보고서에는 편의상 거모동 청동기시대 주거지 1, 2로 구분하고 있다. 두 유적 모두 근래의 시설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완전한 형태의 유구(遺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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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시흥시 계수동 산258-1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바둑판식[남방식] 고인돌로, 매장 주체부가 지하에 있고 거대한 덮개돌이 지상에 드러난 형태이다. 고인돌에서 유물이 직접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변 구릉지와 인근 안골 일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거주한 부락이 있었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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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 유물 산포지. 시흥시 계수동 일원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수습되면서 이곳에 구석기시대 유적이 있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해안 지역에서 인천광역시를 제외한 나머지 경기도 안산시·광명시·시흥시 등지에서 구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이 발견된 사례가 적은 상황에서 보고되어 일정 부분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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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시흥 역사.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고려시대 인주(仁州)와 안산현(安山縣)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이들 지역의 대표적 지방 지배 세력으로는 인주 이씨 가문과 안산 김씨 가문을 들 수 있다. 개경과 가까웠던 이들 지역의 지역민은 대몽항쟁기에는 몽골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으며, 말기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침탈을 당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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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작성된 옛 문서.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문서[공문서]는 『상서(尙書)』이다. 그리고 한국의 고문서는 일반적으로 1910년대 이전의 문서를 말한다. 고문서는 협의로는 공용(公用) 문서[공적이면서 실용적인 문서]를 뜻하고, 광의로는 문자를 포함하고 있는 모든 매개물[기록물]을 뜻한다. 그리고 이 고문서는 작성 당시 문서의 공권력(公權力)[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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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분포해 있는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의 고대 무덤. 고분은 무덤의 일종으로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시기와 형식을 갖춘 매장 시설물을 말한다. 무덤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위생 관념에서 발생한 문화적 소산으로 인류 출현 이후 흔하게 발견되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지하에 시신을 매장하고 지상에 흙을 쌓았는지의 여부에 따라 묘(墓)와 분(墳)을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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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있는 조선 세조 때 조성된 연못. 관곡지(官谷池)는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있는 연못으로 조선 세조 때 강희맹(姜希孟)이 명나라 난징[남경(南京)]에서 가져온 연꽃을 심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조선시대 시흥 지역이었던 안산군의 별호를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시흥시 하중동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안산군 초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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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구종직의 묘. 구종직(丘従直)[1404~1477]의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정보(正甫), 호는 백결(白潔), 시호는 안장(安長)이다. 아버지는 풍저창부사(豊儲倉副使) 구양선(丘揚善), 어머니는 선공감정(繕工監正) 공성길(孔成吉)의 딸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式年)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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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봉에 남아 있는 성황 신앙의 터. 성황(城隍)의 성(城)은 성벽을 뜻하고, 황(隍)은 방어를 위해 성벽을 둘러싼 도랑을 뜻한다. 즉, 성황은 성벽과 도랑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의미이며 성황 신앙이란 성곽 도시의 수호신에 대한 신앙 체계라 할 수 있다. 성황 신앙이 수용된 것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 무렵으로 생각된다. 이때는 전란의 시기였던 만큼 지역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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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무덤. 시흥시 군자동에서 처음 발견되어 지금은 시흥시 거모동 산들공원 내부로 이전 복원한 고인돌로, 한반도 서해안의 청동기시대 묘제의 형태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354번지 구지정마을에서 처음 발견되어 지금은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1352번지 산들공원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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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85년까지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와 안산시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군자면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안산군에 포함되었던 지역으로 지금의 시흥시 거모동, 군자동, 정왕동, 죽율동, 장현동, 월곶동, 장곡동 일대에 해당한다. 삼국시대 이래 1400여 년간 시흥, 안산, 과천은 3개의 군으로 나뉘어 내려오다가 1914년 총독부령 제111호와 경기도령 제3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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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속하는 안산군 초산면 주민들이 1891년 재결성한 동약 조직. 조선 후기에 작성된 『권농편(勸農篇)』에는 1891년(고종 28) 안산군 초산면 일대 주민들이 ‘권농사(勸農司)’라는 조직의 재결성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권농편』은 서문 격인 「역농문(力農文)」과 권농사의 창설 경위를 기록한 「권농사창설연보」, 그리고 1891년(고종 28) 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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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만형의 묘. 권만형(權曼衡) 묘는 김성동(金誠童) 묘의 좌측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좌측 구릉에는 둘째아들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권상(權鏛)과 셋째 청송도호부사 권용(權鎔)의 묘가 있다. 권만형은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자는 공준(公準)이며 화천군(花川君) 권감(權瑊)[1423~1487]의 아들이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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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와 정려문이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권이길(權頤吉)[1588~1627]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순(子順). 아버지는 여산부사 권곤(權鵾)이고, 처는 예천 임씨(醴泉林氏)이다. 권이길의 자세한 활동 사항은 알 수 없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평양판관(平壤判官)으로서 황해도 순안에 침략한 적군을 삭주부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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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 해안 지역 조개더미에서 출토된 조개류를 통해 살펴본 음식 문화. 오이도를 포함한 경기만의 가장 큰 특징은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경기만의 갯벌은 조차(潮差)가 심하고 거센 파도의 영향이 적으며 해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해안으로 많은 육상 퇴적물이 공급되는 장소에서 발달하는 퇴적 지형이다. 갯벌은 만조 시에 수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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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금이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고인돌의 형태에 따른 구분은 탁자식(卓子式), 기반식(基盤式), 개석식(蓋石式), 위석식(圍石式)의 4종류가 있지만, 한반도의 지리적 분포에 따라 편의상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북방식은 한강 이북에서 주로 발견되고, 기반식은 영·호남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어 남방식으로 불린다. 시흥 지역의 고인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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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김백령의 묘. 김백령(金百齡)[1545~1573]의 묘는 할아버지 김성동(金誠童) 묘소 건너 구릉에 자리하며 아버지 김언(金漹)의 묘 아래 구릉에 자리한다. 김백령은 조선시대 선조 대의 인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대로(大老)이며 장예원판결사(掌隸院判決事)를 지낸 김언의 아들이다. 둘째 형이 통정대부(通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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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성동의 묘. 김성동(金誠童)[1452~1495] 묘는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 때 우의정을 지낸 강귀손(姜龜孫) 묘의 좌측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묘 아래에는 차남 김려(金濾)의 묘가 있고, 그 아래 구릉에 현손(玄孫) 김이경(金以鏡)의 묘가 있다. 김성동은 성종 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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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김언의 묘. 김언(金漹)[1495~1553] 묘는 아버지 김성동(金誠童) 묘 건너 구릉에 자리하며, 그 아래 구릉에는 아들 김백령(金百齡) 묘가 있다. 김언은 조선시대 명종 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호원(浩源)이며 부평부사를 지낸 김성동의 삼남이다. 1513년(중종 8) 생원시에 합격했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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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경의 묘. 김이경(金以鏡)[1594~1658] 묘는 김성동(金誠童) 묘 아래 능선에 아버지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 김요(金璙) 묘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동측 산자락에는 김언(金漹) 묘가 자리한다. 김이경은 효종 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회(君晦), 부평부사 김성동(金誠童)의 현손(玄孫)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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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증조할아버지는 증(贈) 좌찬성 김안우(金安祐),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坐) 김영(金瑛),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두남(金斗南),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로 담양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김준룡(金俊龍)[1586~1642]은 1608년(선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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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김준룡의 무덤. 김준룡(金俊龍)[1586~1642]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 어머니는 담양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1608년(선조 41) 23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그 후 법성포만호(法聖浦萬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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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와 묘갈이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공서(公恕), 호는 고정(古亭). 증조할아버지는 동부승지 김징(金澄), 할아버지는 우의정 김구(金構), 아버지는 영의정 김재로(金在魯), 어머니는 청송 심씨(靑松沈氏) 심징(沈澄)의 딸이다. 혼인은 세 번 했다. 첫 번째는 전주 이씨(全州李氏) 좌의정 이관명(李觀命)의 딸이고, 두 번째는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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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안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치인의 무덤. 김치인(金致仁)[1715~1790]의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공서(公恕), 호는 고정(古亭)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김재로(金在魯), 어머니는 심징(沈澄)의 딸이다. 1748년(영조 24) 춘당대(春塘臺)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1755년(영조 31)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1757년(영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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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군수 남계술의 선정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 1901년(고종 38) 전 안산군수(安山郡守) 남계술(南啓述)의 선정을 기념하여 경기도 시흥시 지역에 세워진 비석이다. 한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도 남계술의 선정비가 있는데, 1902년 3월에 건립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인에 대한 선정비가 존재하는 까닭은 남계술이 안산군수로서 재임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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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는 낭정호의 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비. 낭공정호 송덕비(浪公定鎬頌德碑)는 낭정호(浪定鎬)의 덕을 기려 일제강점기에 소작인들이 세운 비이다. 1930년대 낭정호는 경기도 경성부(京城府)[지금의 서울특별시]에 살면서 시흥군에 토지를 가지고 소작을 부리던 부재지주(不在地主)였다. 그러나 소작인들의 곤궁함을 알고 당시로는 드물게 금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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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논곡동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산포지. 경기도 시흥시 논곡동의 유물 산포지는 모두 세 곳이 조사되어 보고되고 있다. 한 곳은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산포지이고, 다른 두 곳은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유물 산포지는 시굴이나 발굴 등 자세한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 도보로 지표면의 다양한 양상을 파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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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산15 일대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 시흥 능곡동 유적은 2005년과 2006년 능곡 택지지구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발굴 조사되었다. 유적에서는 전체 5개 지점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구덩[수혈(竪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때의 돌방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이 중 방사선 탄소 연대는 신석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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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시흥 지역에서 이루어진 몽고군과의 전쟁. 대몽 항쟁(對蒙抗爭)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9차례에 걸친 몽골의 고려 침입으로 촉발된 전쟁으로 항몽 전쟁, 여몽 전쟁 등으로도 불리며 한반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다. 고려시대 대몽 항쟁 중 시흥 지역과 관련이 있는 시기는 몽골군의 6차 침입기인 1256년(고종 43)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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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비는 기우제를 지냈던 터. 대야동 우사단지(雩祀壇址)는 소래산 능선에 있으며 조선시대 인천부의 우사단(雩祀壇) 터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이곳의 지표에는 제단의 구체적인 흔적이 남아 있지 않고, 존재를 직접적으로 증빙하는 문헌 자료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곳에 석렬(石列)로 단을 쌓은 모습이 있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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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대월면은 조선 후기 안산군에 속해 있다가 1914년 시흥군 군자면으로 통합되면서 일부 지역이 경기도 시흥시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군내면, 잉화면, 와리면, 마유면, 초산면과 함께 대월면이 언급되어 있다. 조선 영조 때 정상기(鄭尙驥)[1678~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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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남아 있는 도기와 자기를 굽던 가마터. 요지(窯址)는 우리말로 가마터를 말하며 각종 토기(土器), 도기(陶器), 자기(磁器), 벽돌, 기와 등을 넣고 고온에서 소성(燒成)하던 구조물을 말한다. 가마에서 구운 그릇은 물리적 특성에 따라 토기, 도기, 석기(炻器), 자기로 분류되나 명확한 개념 구분은 논란이 있다. 이 구분은 주로 그릇을 굽는 온도에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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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 신도비, 재실이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지언(止彦). 증조할아버지는 류제근(柳悌根), 할아버지는 류수천(柳壽千), 아버지는 공조판서 류잠(柳潛), 어머니는 하동 정씨(河東鄭氏)로 증(贈) 호조참판 정승렴(鄭承廉)의 딸이다. 광해군의 장인이다. 류자신(柳自新)[1541~1612]은 이담(李湛)의 문인으로 15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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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능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류자신 묘와 신도비. 류자신(柳自新)[1541~1612]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지언(止彦)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 류잠(柳潛), 어머니는 증호조참판 정승렴(鄭承廉)의 딸이다. 류자신은 광해군의 장인이다.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입격(入格)하였고, 문음(門蔭)[공신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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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마유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군자동, 장곡동, 연성동, 월곶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마유면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오는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와 1871년(고종 8)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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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목감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장소. 2000년 초반 지표 조사를 통해 시흥시에서 처음으로 구석기 유적의 존재 사실이 밝혀졌다. 시흥시 계수동, 도창동, 매화동, 목감동 일대 낮은 구릉의 사면이나 평지에서 구석기 유물인 여러면석기[多角面圓球], 찍개 등이 수습된 것이다. 이 중 목감동 구석기 유적은 석기가 발견된 지층에 적갈색 점토가 넓게 분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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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선인들의 무덤들. 시흥시는 산수가 수려하고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많아 선인들의 묘역이 많이 있다. 수리산에서 이어지는 마산[246.1m], 군자봉[198.4m], 범배산[140.2m] 일대는 100~200m의 구릉이 많아 묘를 쓰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시흥시의 묘는 대략 300기 정도 된다. 이 가운데 일제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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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조선시대 갓난아이의 태를 묻었던 석실. 태봉(胎封)은 태실(胎室)이라고도 하며 태반을 묻는 장소 혹은 태를 봉안(奉安)하는 것을 뜻한다. 태봉은 본래 왕족의 태반을 묻은 석실(石室)인데,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일정한 의식과 절차에 따라 태를 봉안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실도감(胎室都監)이라는 임시 기구를 설치하여 관련 일을 진행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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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 이씨, 안산 김씨를 포함한 고려시대 시흥 지방의 지배 세력. 고려시대에는 신라와 달리 이성 귀족(異姓貴族)들에 의한 정치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은 호족이었던 시절의 출신지를 본관(本貫)으로 칭하였고, 본관은 그들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연히 문벌(門閥)이 중시되었고 호적마저도 평민과는 별도로 작성되었다. 문벌을 중시했다는 특징을 고려하여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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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룡(子龍), 호는 기재(寄齋)·오창(梧窓)·봉주(鳳洲). 증조할아버지는 이조좌랑 박조년(朴兆年), 할아버지는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박소(朴紹), 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박응복(朴應福), 어머니는 선산 임씨(善山林氏) 임구령(林九齡)의 딸이다. 처는 여흥 민씨(驪興閔氏)로 승정원승지 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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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박동량 묘와 신도비. 박동량(朴東亮)[1569~1635]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자룡(子龍), 호는 기재(寄齋)·오창(梧窓)·봉주(鳳洲)이다. 아버지는 사헌부대사헌 박응복(朴應福), 어머니는 나주목사 임구령(林九齡)의 딸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增廣) 문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선조 25) 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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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며 서예가인 박미의 무덤. 박미(朴彌)[1592~1645]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연(仲淵), 호는 분서(汾西)이다. 아버지는 의정부우참찬 박동량(朴東亮)이고, 어머니는 승정원승지 민선(閔善)의 딸이다. 선조가 장인이다. 1603년(선조 36) 선조의 다섯째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혼인하여 금양위(錦陽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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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샛말에 살았던 조선시대 문인. 시흥시 하중동 샛말에 면포정(面圃亭)이란 정자를 짓고 살며 당시 안산의 남인(南人) 및 소북계(小北系) 사대부들과 사로사(四老社)라는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순보(純甫), 호는 오헌(傲軒). 백상형(白尙瑩)[1705~1789]의 할아버지는 호조참의(贈戶曹參議) 백검(白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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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법련사의 터. 법련사지(法蓮寺址)는 옛 절터로서 시흥시 조남동에 있다. 법련사는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아버지 장유(張維)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 최근의 지표 조사에 따르면 절터 지점에 유물과 건물의 흔적이 발견되어 원래 절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법련사는 1650년(효종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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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 통신 제도의 기록과 흔적. 봉(烽)은 횃불, 수(燧)는 연기를 말한다. 봉수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전통 시대에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제도이다. 주로 적의 침입이나 내란 혹은 군사적인 소요를 중앙에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록상에 나타난 군사적인 목적의 봉수는 12~1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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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18세기 안산 지역의 남인 및 소북계 사대부들이 결성한 시 모임. 사로사(四老社)는 오헌(傲軒) 백상형(白尙瑩),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의암(蟻庵) 조중보(趙重普), 석가재(夕可齋) 이태길(李泰吉) 등 4명의 인사가 참여한 모임이었다. 이 모임이 결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66년(영조 42) 10월 학산(鶴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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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흥 지역의 문벌이 높은 집안 또는 그 자손. 지금의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부와 안산군에 속해 있었는데, 전통적으로 왕도의 직할지로서 중앙 정계에서 활동하던 유력 정치 세력의 재향(在鄕) 기반이기도 하였다. 경기 지역의 사족(士族)들은 향촌에 세거의 터전을 마련하여 거주하다가 관직으로 현달(顯達)하면 생활 기반을 한양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도 향촌에 존재한 그들의 선영(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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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 및 가야가 병립하였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의 역사와 문화. 삼국시대는 고구려를 비롯하여 마한·변한·진한 등 삼한을 계승한 백제와 신라, 가야가 고대 국가로서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는 3세기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던 668년까지를 의미한다. 삼국시대는 삼국 및 가야 이외에 부여·옥저·동예 등 여러 나라가 공존한 시기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고구려·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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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에 있는 자연 마을 부농의 전통 주택. 생금집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것으로 시흥시 죽율동의 자연 마을인 한배미마을의 중심에 있다. 오래전부터 금녕 김씨(金寧金氏)가 이곳에 세거했으며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경기도 가옥의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는 향토유적이다. 생금집은 건물이 세워진 연원과 관련된 전설도 내려와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문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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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문자로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기 이전의 유적과 유물. 2000년대를 기준으로 시흥 지역의 선사시대 유적은 7개, 조개더미[패총(貝塚)]는 4개, 선사시대 분묘(墳墓)는 13개, 선사시대 유물 산포지는 17개가 지표 조사되었다. 시흥시의 선사 유적은 향후 정밀 발굴 조사나 지표 조사를 통해 더 늘어날 것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계수동 구석기 유적,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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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성세장의 묘. 성세장(成世章)[1506~1583]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중회(仲晦)·경회(景晦), 호는 사암(思庵)이다. 현풍현감 성희문(成希文)의 아들이나 사헌부감찰 성희적(成希赤)에게 입양되었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이다. 1540년(중종 35) 진사로 식년(式年) 문과에 올라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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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성여용의 묘. 성여용(成汝容)[1581~1608]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子受)이다. 호조좌랑(戶曹佐郞) 성완(成玩)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상서원부직장(尙瑞院副直長) 성오(成澳)이고, 대사헌 심의겸(沈義謙)의 손자사위이다. 사대부로서의 고상한 덕행이 있었으나 28세의 나이로 일찍 죽어 아들 성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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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성운한의 묘. 성운한(成雲翰)[1606~1688]은 본관이 창녕(昌寧)이고, 자는 붕거(鵬擧)이다. 성여용(成汝容)의 아들이자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의 장인이다. 숙종 대의 문신으로 1635년(인조 13) 사마시(司馬試)에 입격(入格)하였으나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낙향하였다가 1650년(효종 1)에 이르러 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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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성희철의 묘. 성희철(成希哲)[1464~1512]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명(子明)이다. 문효공(文孝公) 성사달(成士達)의 현손(玄孫)이며 호조좌랑(戶曹佐郞) 성완(成玩)의 아들로 6형제[희건(希騫), 희중(希仲), 희철(希哲), 희적(希赤), 희문(希文), 희주(希周)] 중 셋째이다. 1496년(연산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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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인천과 안산에 속해 있었다. 조선 초기 인천에는 이(李)·공(貢)·하(河)·채(蔡)·전(全)·문(門)의 토착 성씨가 있었고, 내성(來姓)으로 박(朴)이 있었으며, 망성(亡姓)으로 최(崔)가 있었다. 안산에는 김(金)·안(安)·방(方)의 토착 성씨와 망성으로 임(林)이 있었다. 이들 토성 중 안산의 안산 김씨(安山金氏)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씨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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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영향을 주었던 조선시대의 소금 수취 제도. 소금은 식생활의 필수품이자 국가의 중요한 세금원이었다. 국가에서는 일찍부터 소금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국가 재정으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시도하였다. 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행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관련 언급이 있었지만, 정책으로 기록에 담기 시작한 때는 고려시대부터이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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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소전미술관 뒤뜰에 있는 여덟 구의 불상. 시흥시 대야동에 있는 소전미술관 뒤뜰에는 1960~70년대 충청북도에서 옮겨왔다고 전하는 석불좌상 1구와 불상 7구가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들에는 명문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심에 위치한 석불좌상은 수인(手印)과 의습선(衣褶線) 등 양식적 특성으로 미루어 보아 통일신라시대 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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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부터 1985년까지 현재의 경기도 시흥시와 안산시 일대에 설치된 행정구역. 수암면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안산군에 포함되었던 지역으로 지금의 시흥시 논곡동, 목감동, 물왕동, 산현동, 조남동, 광석동, 하상동, 하중동, 능곡동, 화정동 일대에 해당한다. 삼국시대 이래 1400여 년간 시흥, 안산, 과천은 3개의 군으로 나뉘어 내려오다가 1914년 총독부령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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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자와 백자를 굽던 가마터. 시흥 방산동 청자와 백자 요지는 1990년대 초반경 학계에 알려진 이래 정식으로 발굴 조사가 된 생산 유적이다. 시흥 지역에서 가마터가 발견된 곳은 계수동, 광석동, 도창동, 무지내동, 물왕동, 미산동, 방산동, 장현동, 포동 등이다. 이 중 와요지(瓦窯址)가 2곳, 옹기 요지(窯址) 1곳,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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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소래산 장군바위에 새겨져 있는 불상.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 입상은 고려시대 소래산 중턱에 있는 장군바위[병풍바위]에 새겨진 총 높이 15m의 거대한 불상(佛像)이다. 바위 면에 선각(線刻)되어 불교 회화처럼 평면적이지만 거대한 규모와 유려한 조법(彫法)이 돋보이는 국내 최대 크기의 마애상(磨崖像)이다. 소재지는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산140-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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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와 주거지 유적. 시흥 오이도 유적은 기원전 3500~3000년경 신석기시대 중·후기의 조개더미[패총(貝塚)]로서 당시 사회, 경제, 문화 양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적인 생활 유적이다. 경기만의 서해안 대부분 섬에서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 유적이 확인되고 있지만, 그중에서 시흥 오이도 유적은 조개더미가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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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장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 안산군수와 관리들의 선정을 기리는 3기의 비석. 시흥시청 송덕비군은 모두 3기로 크기별로 나란히 서 있다. 좌측부터 권용정 영세불망비(權用正永世不忘碑), 박기회 거사비(朴氣會去思碑), 이규현 영세불망비(李奎鉉永世不忘碑) 순이다. 이 가운데 안산군수를 지낸 권용정의 비가 가장 크다. 안산군수의 다른 명칭은 연성(蓮城)군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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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신고개면은 신현면의 다른 이름으로 신고개면의 '고개(古介)'는 우리 말인 '고개'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고, 신현면의 '현(峴)'은 '고개'의 뜻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따라서 신고개면과 신현면은 같은 지명을 의미한다. 신고개라는 지명은 현재의 동 이름인 ‘신현’의 관련 기록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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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금이동에 있는 평산 신씨 신도철의 공덕을 기리는 비. 신도철 공덕비(申道澈功德碑)는 시흥시 금이동 도리재[桃李峴]마을 입구에 건립되어 있다. 비석의 주인공인 신도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비석의 현재 위치와 비제(碑題) 그리고 마을의 연원과 연결해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신도철은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며 평산 신씨 가계가 금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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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서 간석기를 사용하였던 기원전 5000년대 전반부터 기원전 1500년 무렵까지의 시기. 한반도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 제주도 한경면 고산리 유적에서 토기가 출토된 이래로 청동기시대가 개시되는 기원전 15세기~기원전 14세기까지로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 홍적세가 끝나고 신생대 4기 충적세 후빙기가 펼쳐져 기후가 온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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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북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신현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은행동, 신천동, 대야동, 포동, 방산동, 미산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신현면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오는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여지도서』 「인천도호부 방리조(坊里條)」에 신현면은 “인천부에서 동남으로 30리[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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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남부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할하였던 행정구역. 안산군은 지금의 시흥시 남부를 비롯해서 안산시 일원과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 군포시 대야동, 의왕시 부곡동 일부 등이 해당되는 행정구역이다. 고을의 치소(治所)인 읍치(邑治)는 지금의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었다. 경기도 시흥시 남부가 속해 있던 안산군은 서해안 시화호 일대에서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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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안현동에서 청동기시대 토기 조각이 발견된 세 곳의 유물 산포지. 2000년 기전문화재연구원[지금의 경기문화재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경기도 시흥시 안현동에서 유물 산포지 7곳이 발견되었다. 이 중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곳은 안현동의 유물 산포지 세 곳으로 모두 낮은 구릉에서 민무늬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정식으로 발굴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청동기시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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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물살을 조정하여 물고기를 잡도록 한 어로 도구 혹은 그것이 설치된 장소. 어량(魚梁, 漁梁)은 물이 흐르는 곳에 물살을 제한하여 그곳에 함정 어구(漁具)를 놓아 고기를 잡도록 한 곳을 일컫는다. 어량은 어구를 설치한 모양이 교량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성종 때부터는 어량보다는 어전(漁箭)이라는 명칭이 실록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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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 정부에서 징수한 어세·염세·선세를 통칭하는 용어. 조선시대 정부는 토지와 백성뿐 아니라 어장(漁場)과 염장(鹽場), 선박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어세(漁稅), 염세(鹽稅), 선세(船稅)이다. 어염선세(漁鹽船稅)는 『경국대전』에서 처음으로 법제화되어 조선 후기까지 변화하며 유지되었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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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포동 출신의 조선 후기 문장가.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원례(元禮), 호는 학산(鶴山). 엄경응(嚴慶膺)[1696~1784]의 증조할아버지는 영월군수 엄침(嚴忱), 할아버지는 엄항구(嚴恒耈), 아버지는 엄진(嚴縉)이고, 처는 정익천(鄭翊天)의 딸이다. 엄경응은 1766년(영조 42) 사로사(四老社)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사로사는 18세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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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시흥시의 변천 과정. 시흥시는 경기도 중서부에 있는 지방자치단체로 옛 시흥 지역은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 일부와 경기도 안산시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구체적으로 고려시대에는 인주(仁州)와 안산현(安山縣)에 해당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안산군(安山郡)과 인천부(仁川府)에 속했던 곳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기존의 안산군·과천군·시흥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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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위해 설치한 가마 모양의 솥. 염분(鹽盆)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굽기 위해 설치한 소금가마[鹽釜]를 말한다. 또한 염분은 염전(鹽田)이나 소금 제조량[鹽製造]의 한 단위, 다른 뜻으로는 염분에서 소금을 징수하는 권익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금은 식료품의 하나로 인간의 생리 작용에서 필수적인 물질이며 대체 식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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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과거 전통 시대에 소금을 생산하던 장소. 소금은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과거에도 사람들의 생활 필수품이었다. 그 소금을 생산하던 곳을 옛날에는 염소(鹽所)라고 하였다. 전통 시대에 소금은 그 생산과 유통을 통제할 때 생기는 이득이 국가 재정에 큰 기여를 해왔기 때문에 국가는 일찍부터 소금의 생산과 조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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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 세종의 여덟 번째 왕자.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염(琰), 자는 명지(明之), 호는 서곡(西谷). 영응대군(永膺大君)[1434~1467]의 증조할아버지는 태조, 할아버지는 태종, 아버지는 세종,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로 청송 심씨(靑松沈氏)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처음에 여산 송씨(礪山宋氏) 판중추부사(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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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왕자 영응대군 묘와 신도비. 영응대군(永膺大君)[1434~1467]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명지(明之), 호는 서곡(西谷)이다. 아버지는 세종,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로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영흥대군(永興大君)에 봉해졌다가, 1443년(세종 25)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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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원성모의 묘. 원성모(元成模)[1569~1637]의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경범(景範), 호는 송운(松耘)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원계검(元繼儉),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郎) 원호영(元虎英)이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거산도찰방(居山道察訪)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근왕병을 모집하여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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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민일의 묘. 윤민일(尹民逸)[1564~1635]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현세(顯世), 호는 지산(芝山)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 윤엄(尹儼)이고,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주(金澍)의 딸이다. 셋째 형 윤민헌(尹民獻)과 같이 경기도 파주의 우계서실(牛溪書室)에서 성혼(成渾)에게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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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서 활동한 조선 전기의 문신. 윤민헌(尹民憲)[1562~1628]은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경기도 안산 궤화동(樻火洞)[지금의 시흥시 산현동] 출신으로 1609년(광해군 1) 증광시로 관직에 나아가 1618년(광해군 10) 대동찰방(大同察訪)에서 해임되어 돌아와 살다가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으로 다시 조정에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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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윤민헌의 묘. 윤민헌(尹民憲)[1562~1628]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익세(翼世), 호는 태비(苔扉)이다. 할아버지는 윤지함(尹之諴)이고, 아버지는 호조좌랑 윤엄(尹儼)이다. 어머니는 화산군(花山君) 김주(金澍)의 딸이며,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안산군 초산면 궤곡리[지금의 시흥시 산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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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윤엄의 묘. 윤엄(尹儼)[1536~1581]은 선조 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사숙(思叔), 호는 송암(松巖)이다. 윤승유(尹承柳)의 증손(曾孫)으로 할아버지는 영평위(鈴平尉) 윤섭(尹燮)이고, 아버지는 윤지함(尹之諴)이다. 아들 윤민헌(尹民獻)과 윤민일(尹民逸)은 성혼(成渾)의 제자이다. 승문원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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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시흥현령 윤완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 윤완 영세불망비는 조선시대 시흥현령(始興縣令) 윤완(尹琓)[1817~?]의 선정을 기념하여 세운 비이다. 윤완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미헌(美獻)이다. 사망 시기나 생애는 불분명하나 윤완의 관직 이력은『승정원일기』에 잘 드러나 있다. 1868년(고종 5) 2월 기사에는 시흥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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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문신. 윤지완(尹趾完)[1635~1718]은 1662년(현종 3)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1673년(현종 14) 설서(說書)를 시작으로 어영대장, 예조판서, 경상도관찰사, 병조판서, 좌참찬, 우의정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고향 안산 동산골[지금의 안산시 원곡동]에 내려와 살다 84세로 사망하였다. 청백리에 녹선(錄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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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물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광원의 묘. 이광원(李光遠)[1634~1692]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덕여(德餘)이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郎) 이군미(李君美)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찰방(察訪) 노수눌(盧守訥)의 딸이다. 1680년(숙종 6)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 있으면서 『선원보(璿源譜)』를 정리하는 일을 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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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포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동익의 묘. 이동익(李東益)[1668~1730]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겸(受謙)이다. 태종의 왕자 익령군(益寜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郎) 이창명(李昌明)이고, 어머니는 증승정원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정원(鄭源)의 딸이다. 1697년(숙종 23) 정시(庭試)에 급제하였고, 1699년(숙종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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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마을에 거주한 양명학자 정제두의 학설. 이목구비설(耳目口鼻說)은 정제두(鄭齊斗)[1649~1736]의 저술 『존언(存言)』의 상편에 기재된 학설로서 심즉리(心卽理)의 이치를 마음과 신체 기관, 사물의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한 글이다. 정제두는 마음과 이목구비, 성색취미(聲色臭味)의 관계는 모두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목구비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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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포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비 이변의 묘. 이변(李昪)[1691~1763]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휘(季輝), 호는 백무와(百無窩)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이동형(李東馨)이며 작은아버지 이동익(李東益)의 양자로 들어갔다. 문장에 뛰어났지만 벼슬에 뜻이 없어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경기도 시흥시 포동 산53에 있다. 포동 새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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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출신의 조선 후기 효자. 18세기~19세기에 발급된 이상기(李相夔)[1631~1686] 일가의 준호구(準戶口) 12점이 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준호구는 관청에서 호구장적(戶口帳籍)에 의거하여 개인의 호적 사항을 증명해 주기 위해 발급한 문서로서 이상기 후손인 이목형(李穆亨), 이병황(李秉璜), 이재용(李在容)이 준호구의 호수(戶首)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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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출신인 이상기 일가의 호적 관련 고문서 12점.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이상기(李相夔) 일가의 준호구(準戶口) 12점으로, 이상기 후손인 이목형(李穆亨)·이병황(李秉璜)·이재용(李在容)이 준호구의 호수(戶首)로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는 1693년(숙종 19) “효자 증통정대부 이조참의 이상기지문(孝子贈通政大夫吏曹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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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이상기의 정려문. 이상기(李相夔) 정려문(旌閭門)에는 이상기의 정려기(旌閭記)가 게시되어 있다. 정려기의 내용에 따르면 이상기[1631~1686]는 부친에 대한 효행으로 1683년(숙종 9)에 효자 정려문이 내려지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효행의 내용은 19세기 후반 고종 연간에 편찬된 『안산군읍지』 충효열조(忠孝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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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금이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숙의 묘. 이숙(李琡)[1498~1549]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옥(伯玉)이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4대손으로 아버지는 음평부수 이효손(李孝孫)이고, 어머니는 증(贈)병조판서 남계(南械)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사직서남부참봉(社稷署南部參奉)에 보임된 후 연원역(連原驛)과 도원역(桃源驛) 찰방(察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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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안성(安城), 자는 백응(伯應), 호는 운정(芸亭). 이숙번(李淑蕃)[1373~1440]의 증조할아버지는 이부시랑(吏部侍郎) 이희(李禧), 할아버지는 전리판서(典理判書) 이사정(李思正),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이경(李坰), 어머니는 영양 남씨(英陽南氏) 전리판서 남휘주(南輝珠)의 딸이다. 부인은 청주 정씨(淸州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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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숙번의 묘. 이숙번(李叔蕃)[1373~1440]의 본관은 안성(安城), 자는 백응(伯應), 호는 운정(芸亭)이다. 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 이경(李坰), 어머니는 전리판서(典理判書) 남휘주(南輝珠)의 딸이다. 1393년(태조 2)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398년(태조 7) 지안산군사(知安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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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죽율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양신의 묘. 이양신(李亮臣)[1689~1739]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원량(元亮), 초명(初名)은 종신(宗臣)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이희조(李喜朝), 어머니는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의 딸이다.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진출한 후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공조좌랑(工曹佐郞)을 역임하고, 1727년(영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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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물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비 이창진 묘. 이창진(李昌鎭)[1689~1763]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성(士盛)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이규징(李奎徵)이다. 1740년(영조 16) 생원시에 입격(入格)하였으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책만 읽었다. 경기도 시흥시 물왕동 산34에 있다. 흥부저수지[물왕저수지]에서 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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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우경(禹卿). 증조할아버지는 증(贈) 이조참판 이성(李珹), 할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이군미(李君美), 아버지는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이광원(李光遠), 어머니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김해(金垓)의 딸이다. 처는 오씨로 통덕랑(通德郞) 오시건(吳始建)의 딸이다. 이하보(李夏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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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물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하보의 묘. 이하보(李夏輔)[1652~1716]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우경(禹卿)이다. 아버지는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이광원(李光遠), 어머니는 김해(金垓)의 딸이다. 1697년(숙종 23) 문음(門蔭)으로 참봉(參奉)에 보임되고, 제용감(濟用監)·상서원(尙書院)·태복시(太僕寺)·의금부(義禁府)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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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안골에서 출생한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비.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인선(仁宣). 증조할아버지는 목천현감 장일(張逸),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장운익(張雲翼),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張維),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로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조선 17대 효종의 왕비이다. 자녀는 1남 5녀로 조선 제18대 왕 현종, 숙안(淑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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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 지역 일대를 1413년부터 1460년까지 관할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조선 초기 인주(仁州)로 불리던 인천광역시는 1413년(태종 13) 고려 왕실의 잔재 청산과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중앙집권 강화를 위하여 경기도 인천군(仁川郡)으로 강등, 축소되었다. 당시 경원부(慶源府)의 옛 이름인 인주의 '인(仁)' 자와 주·부·군·현에 '산(山)'이나 '천(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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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때 경기도 시흥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일본의 침략 전쟁.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은 1차의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의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를 포함하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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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곡지(官谷池)는 조선시대부터 시흥 지역에 세거한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조선 제7대 왕 세조 때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이 중국 명나라 난징[南京]에서 가져온 연꽃을 심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조선시대 시흥 지역이었던 안산군의 별호(別號)를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관곡지는 강희맹의 딸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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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장선징 묘. 장선징(張善澂)[1614~1678]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정지(淨之), 호는 두곡(杜谷)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張維), 어머니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효종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오빠이다.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인조 때 김화현감, 효종 때 공조정랑(工曹正郞)·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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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장운익의 신도비. 장운익 신도비(張雲翼神道碑)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2호인 장유(張維) 선생 묘 및 신도비 뒤쪽에 있다. 원래 장운익(1561~1599)의 묘소와 신도비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방배동[지금의 서초구 방배동]에 있었는데, 1960년 도시 개발로 묘를 잃게 되고 신도비만 있던 것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조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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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서 활동한 조선시대의 문신. 장유(張維)[1587~1638]는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으로 파직되어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장곡동 안골]에 내려와 12년을 살았고 말년을 보냈다. 인조반정으로 등용되어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조선 문학의 사대가(四大家)이며 주자학 중심의 학문적 풍토를 비판하고 양명학에도 조예가 깊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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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장유의 묘와 신도비. 장유(張維)[1587~1638]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이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장운익(張雲翼)이며, 어머니는 판윤(判尹) 박숭원(朴崇元)의 딸이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이고, 효종의 비(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다. 김장생(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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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전반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 안현동, 금이동, 도창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도호부 방리조(坊里條)」에 “인천도호부는 부내면, 조동면, 신현면, 전반면, 황등천면, 남촌면, 원우이면, 다소면, 주안면, 이포면의 10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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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있었던 과거 사찰의 흔적이나 사찰의 터. 절터는 폐사지(廢寺址)라고도 이르며 과거에 운영되던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명맥이 끊겨 흔적만 남은 터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과거 문헌에 기재된 사찰의 명칭이나 절터에서 발견되는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적 연혁과 실제 명칭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으로 판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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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화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근의 부인 창원 황씨 무덤. 정근 처 창원 황씨(鄭謹妻昌原黄氏)[1576~1635] 묘(墓)는 정몽주(鄭夢周)의 5대손 정광윤(鄭光胤) 묘와 시아주버니 정열(鄭說) 묘 아래쪽 서편에 있다. 창원 황씨는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 정근(鄭謹)의 두 번째 부인이다.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황치경(黃致敬)이고, 어머니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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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광석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숭조의 묘. 정숭조(鄭崇祖)[1442~1503]의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효숙(孝叔), 호는 삼성재(三省齋)·우련(友蓮)이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이다. 1458년(세조 4) 음보(蔭補)[조상의 덕으로 얻은 벼슬]로 통례문봉례랑(通禮門奉禮郎)이 되고, 그 뒤 이조참판·공조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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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화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비 정열의 묘. 정열(鄭說)[1564~1594]은 선조 대의 인물로 자는 학이(學而)이다. 부인은 단양군수 기의(奇薿)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맑고 부모에 효도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으나 일찍 죽었다. 양명학자 정제두(鄭齊斗)의 종증조(從曾祖)가 된다. 묘는 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산90-4에 있다. 정몽주(鄭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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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정왕동 고인돌은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서 발견된 고인돌이다. 시화국가산업단지 개발로 인해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지 않다. 발견된 경위와 조사 기록이 소략하게 남아 형태만 간략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시흥시 정왕동 산119-5 일대의 시화국가산업단지 북쪽 끝에 있는 작고 낮은 구릉의 동남 사면에서 발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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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마을에 거주했던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한국 양명학의 대종사. 정제두(鄭齊斗)[1646~1736]는 학자로서 평생 학문을 연구하며 살았다. 잠시 평택현감과 회양도호부사로 부임하고 영조의 총애를 받아 이조참판, 대사헌, 세자시강원찬선(世子侍講院贊善),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 등의 요직에 기용되었지만 지속적으로 사퇴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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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후기의 수리·관계 시설. 17세기 조선 정부의 당면 과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파괴된 농촌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농지 개간과 수리 시설의 확충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증진시키려 하였다. 황폐한 진전(陳田)[전안(田案)에는 경지로 되어 있으나 오랫동안 경작하지 아니한 토지]을 개간하고, 수리 시설을 복구하여 저습지(低濕地)[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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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 해안이나 강변에 살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버린 조개껍데기와 쓰레기 등이 무덤 형태로 된 유적. 조개더미는 조개무지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패총(貝塚)이라 한다. 조개더미는 주로 조개껍데기로 구성되나 이 외에 다양한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하여 더 이상 쓸모없는 부서진 석기, 토기 등 일상적인 생활 쓰레기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개더미가 출현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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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의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된 장소. 조남동 민무늬토기 산포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방치된 접속부의 경계면에서 발견되었다. 1998년 기전문화재연구원[지금의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 민무늬토기 조각과 돌도끼 등 청동기시대 유물을 수습하고 유물 산포지로 보고된 이래 후속 조사는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유적의 범위나 유구(遺構)의 형태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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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조선시대 안산군의 사직단 터로 전하는 유적. 사직단(社稷壇址)이란 사(社)와 직(稷)의 두 신을 모신 제단이다. 사는 토지신, 직은 곡물신을 말한다. 땅과 곡식은 고대 농업국가에서 생존과 번영에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사직단은 기원전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도 기록이 있지만 본격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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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조남리 지석묘는 1988년 3월 21일 경기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른다. 조남리 지석묘는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 408-4에 있다. 1985년 11월 1일 시흥군 수암면 조남리[지금의 시흥시 조남동] 안골마을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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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시흥시의 역사.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는 조선시대 안산군(安山郡)과 인천부(仁川府)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군자·수암권은 안산군의 잉화면(仍火面), 초산면(草山面), 마유면(馬遊面), 대월면(大月面)에 해당한다. 소래권은 인천부의 신현면(新峴面), 전반면(田反面), 황등천면(黃等川面)에 해당한다. 시흥 지역은 조선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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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에서 출생하고 묘가 있는 조선 후기 자선가.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장옥(章玉). 주희(朱熹)의 29세손이며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주의동(朱宜東)의 1남이다. 주석범(朱錫範)[1815~1880]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중림에서 세거하면서 관내 가난한 마을 주민들에게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그의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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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원에 있었던 조선시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거나 공적인 일에 마필을 공급하던 곳. 중림역(重林驛)은 조선시대 중림역도(重林驛道)에 딸린 7개소 속역(屬驛)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의 역원(驛院) 제도는 고려시대의 것을 이어 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태종~세종 연간에 걸쳐 전국적인 규모의 역로망을 구축하였다. 경기도에는 대로(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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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진덕사 본전에 봉안한 조선 후기의 약사여래 불상. 진덕사 석조 약사불 좌상은 시흥시 능곡동 진덕사 본전(本殿)에 모신 약사불(藥師佛)이다. 둔중한 형태 묘사와 세부 표현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불의 도상적(圖像的) 특징인 약기(藥器)를 가슴 앞에서 두 손으로 모아 받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약사불의 일반적인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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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쓰던 시기. 우리나라의 철기시대는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기원전 5~4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4~3세기경부터 한군현(漢郡縣)의 영향으로 단조(鍛造) 철기가 대량으로 보급되는 기원 전후까지를 초기 철기시대로 설정하고 이후 3세기까지를 철기시대 또는 원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와 인접한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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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기. 청동기시대는 신석기시대에 이어 나타났으며,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철제 도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인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의 시기이다.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와 간석기가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청동기가 제작되었으며, 고인돌[지석묘(支石墓)]과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이 등장하고 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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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거모동에 있는 조선시대 청주 한씨 문익공파의 무덤이 있는 지역. 조선 전기의 문신 문익공(文翼公) 한준겸(韓浚謙)[1557~1627]과 아들 한회일(韓會一)[1589~1642], 손자 한이성(韓以成)[1602~1634], 증손자(曾孫子) 한두상(韓斗相)[1627~1687]의 묘가 함께 조성된 4대에 걸친 묘역이다. 한준겸의 본관은 청주(淸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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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초산면은 조선시대 안산군에 포함되었던 지역으로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북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지금의 시흥시 광석동, 물왕동, 산현동, 조남동, 논곡동, 목감동, 하상동, 하중동 일대에 해당한다. 조선 후기 전국의 호수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총수(戶口總數)』의 「안산군」에 초산면의 목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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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포동 출신의 조선 후기 문장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주헌(周憲), 호는 현재(弦齋). 최창헌(崔昌憲)의 증조할아버지는 최석태(崔錫泰), 할아버지는 최창걸(崔昌傑), 아버지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최수로(崔守魯)이다. 최창헌은 18세기 안산 지역의 시사 모임인 사로사(四老社)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사로사는 처음에 안산의 4대 문장가로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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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세거한 파평 윤씨 윤민헌 집안의 관원 임명장. 조선시대 안산군[지금의 시흥시 산현동 일대]에서 세거한 파평 윤씨(坡平尹氏) 충정공파 윤민헌(尹民獻) 일가의 17~19세기의 고신류(告身類) 110점을 이른다. 1989년 시흥시가 출범한 이래 시흥시 전통문화유산보호위원회의 이한기(李漢基)[필명 이승언] 상임위원의 노력으로 1995년 발간된 『시흥향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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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에 묘·신도비·서원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옹(新稀翁). 증조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하즙(河楫), 할아버지는 대사헌 하윤원(河允源), 아버지는 판청주목사(判淸州牧使) 하자종(河自宗), 어머니는 진주 정씨(晋州鄭氏)로 이조판서 정우(鄭寓)의 딸이다. 하연(河演)[1376~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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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하연의 묘. 하연(河演)[1376~1453]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이다. 아버지는 판청주목사(判淸州牧事) 하자종(河自宗), 어머니는 이조판서 정우(鄭寓)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1396년(태조 5) 식년(式年)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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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하우명을 기리기 위해 집 앞에 세운 붉은 문. 정려(旌閭)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알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는 ‘정문(旌門)’, ‘정표(旌表)’라고도 한다. 정려는 건물의 여부나 대상에 따라 세분된다. 건물 없이 문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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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지역에 묘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 한준겸(韓浚謙)[1557~1627]의 증조할아버지는 정선군수 한승원(韓承元), 할아버지는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한여필(韓汝弼), 아버지는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한효윤(韓孝胤),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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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거모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한준겸 묘 및 신도비. 한준겸(韓浚謙)[1557~1627]의 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한효윤(韓孝胤), 어머니는 예빈시정(禮賓寺正) 신건(申健)의 딸이다. 한준겸은 인조의 장인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시·진사시에 동시 입격(入格)하였는데, 생원시는 1등이었다. 1586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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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 있었던 신풍부원군 장유의 가옥. 해장정사(海莊精舍)는 장유(張維)가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되어 파직되자 고향인 안산[지금의 시흥시 장곡동 산68]으로 낙향하여 12년간 살던 집이다. 이곳에서 외아들 장선징(張善徵)과 인선왕후(仁宣王后)를 낳았다. 이 곳에서 장유는 손수 농사를 짓고 독서를 하고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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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경기도 시흥시 일부 지역을 관할하였던 조선시대 행정구역. 황등천면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 과림동, 무지내동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황등천면은 조선 후기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도호부 방리조(坊里條)」에 “인천부에서 동남으로 30리[약 12㎞]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18세기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