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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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종교/기독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성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6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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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72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35년 4월 1일![]() |
해당 지역 소재지 | 여숫골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읍내리 274-10]![]() |
성격 | 매장 터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박해 당시 매장 터.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와 조산리 접경 부근의 해미천 주변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기에 신자들을 생매장, 익사, 교수 등의 방법으로 처형하던 형장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일대는 이른바 여숫골로 불리기도 했다.
조산리의 해미천 변은 배교를 거부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가장 처참하게 순교한 곳이다. 둠벙에 수장되거나, 산 채로 매장을 당하면서도 순교자들이 하나같이 외치던 이름이 있었으니, ‘예수-마리아’였다. 현세의 생을 마감하고 예수를 통해 천국으로 옮아가리라는 희망과 이제껏 지켜온 예수를 저버릴까 두려워 마리아의 도움에 의지하던 순교자들의 신앙 고백이 담긴 유언이다.
이들의 신앙을 알 길 없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순교자의 낯선 절규가 마치 ‘여수-머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렇지, 필시 저들은 여수[여우]에게 홀렸으니 저렇게 죽는 게지. 멀쩡한 사람으로 그토록 어리석게 죽을 수는 없는 게지.” 절체절명의 순간에 울부짖던 신앙의 절규 ‘예수-마리아’는 그렇게 ‘여수-머리’로 변형되었고 그래서 여숫골이 되었다.
천주교 당국에서는 1935년부터 이곳 여숫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성역화 작업을 추진해 왔다. 현재는 해미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여숫골 일대는 읍을 관통해 흐르는 해미천과 함께 그 주변 늪지와 들판이 이어졌던 곳이다. 현재는 도시의 확장으로 늪지와 들판의 모습을 볼 수 없으나 해미천이 인접해 흐르고, 평지와 둠벙도 일부 남아 있어 당시의 모습을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사행천이었던 해미천은 현재 강을 따라 제방이 축조되어 있어 물줄기의 변화나 범람의 우려가 거의 없다. 이곳에는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과 성당 및 편의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고, 처형이 이루어진 진둠벙과 생매장 당한 순교자의 유해들이 안장된 무덤 등 여숫골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해미성지가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