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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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郡農會 |
영어음역 | Seosangun Nonghoe |
영어의미역 | Seosan-Gun Agricultural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지수걸 |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조선농회 소속 지부.
일제 강점기 서산 지역의 대지주들은 조선 총독부의 지도 감독 아래 농업을 개발하고, 농민을 수탈하고, 농촌을 통제하는 삼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1926년에 체계화된 이른바 계통 농회였다. 서산군 농회 역시 이러한 계통 농회의 하나이다. 주요 임원은 대부분 서산 지역의 재지 대지주들이었다.
서산군 농회는 조선 총독부의 주도로 서산 지역의 농민들을 통제, 수탈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6년 서산 지역에는 농회·여자잠업전습소·축산동업조합·삼림조합·어업조합 등 산업 조장 기관[조합]이 있었으나 가장 큰 조합은 역시 농회였다. 1926년 계통 농회가 조직되기 이전에는 양잠조합과 지주회(地主會)가 있었으나 1923년 3월 장래 농회령(農會令)이 발포될 것을 전제로 양잠조합과 지주회를 해산한 뒤 1923년 4월 도지사의 인가를 얻어 농회로의 통합을 성사시켰으며, 사무소는 군청 내부에 두었다.
이후 1926년 1월 제령 제1호로 농회령이 발표되자 김우규(金雨圭) 외 39명의 발기인을 중심으로 회원 자격자 2만 4208명[군내 2만 3142명, 군외 1,066명] 중 1만 8164명의 동의를 얻어 같은 해 3월 1만 1532명의 회원이 참석[출석 회원 821명, 위임 출석 회원 1만 5712명]한 가운데 농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안재호(安載瑚) 외 39명의 명의로 도지사에게 설립 인가를 신청하여 ‘충남농(忠南農) 제489호’로 1926년 3월 기존의 농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농회를 결성하였다.
서산군 농회의 업무는 ① 지도기술원 설치, ② 채종전 및 모범답전 설치, ③ 품평회, 강습회, 강화회 설치, ④ 종자 비료 농구 기타 생산용 물품의 공동 구입 및 판매 알선, ⑤ 농업 창고 경영, ⑥ 자금 융통 알선, ⑦ 부업 장려, ⑧ 소작 관행 개선, ⑨ 지주 사음 소작인 지도, ⑩ 농업 연구 조사, ⑪ 소작 쟁의 조정 중재, ⑫ 농업 의견 건의 및 행정 관청의 자문 답신 등이었다.
서산군 농회는 1927년 서산 군내에 마을 단위로 조직된 160여 개의 진흥회를 매개로 농사 개량, 저축 장려, 언문 강습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농회와는 별도로 군 단위의 ‘지주 간담회’를 수시로 조직하여 농사 개량이나 소작인 통제 활동 등에 이용하였다. 서산군 농회는 1932년 3월 농촌 경기 만회를 위한 지주회 겸 서산군 산업자 대회를 열고 농사 개량 시설, 전작 개량, 퇴비 증산, 소작인 지도책-소작인회 조직, 소작 쟁의 방지책[5개년 이상 소작 계약] 등을 결의하기도 하였다.
농회 이외에 서산 지역에는 여자잠업전습소[1919년 설립], 축산동업조합[1917년 설립], 어업조합[1920년 설립], 삼림조합[1924년 설립, 1925년 조직 개편] 등의 산업 단체가 조직되었는데 이런 조직의 평의원들도 대부분 대지주들이었다.
창립 시기 서산군 농회의 회장은 군수[도지사 임명], 부회장은 군 서무계 주임[도지사 임명]이었다. 서산군 농회의 통상 의원(通常 議員)은 40명, 특별 의원은 13명, 평의원 12명이었으며, 이들은 회장인 군수가 임명하였다. 1926년 서산군 농회의 회장은 군수인 이민영(李敏寧), 부회장은 권업과장인 칠도전렴이(七島田廉二)이었으며, 그 아래에는 월급을 지불하는 21명의 기수(技手) 직원, 4명의 촉탁(囑託)이 있었다.
또한 대부분이 대지주인 조선인 유지 53명은 특별 의원 혹은 통상 의원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각 면장들은 당연직으로 통상 의원과 더불어 의원 분구장(分區長)을 역임하였다. 서산군 농회는 관 주도로 운영되었으나 지주 등 이른바 유지들의 참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창립 시기 서산군 농회의 회원 자격자는 모두 2만 4208명이었으나 설립에 동의한 동의자의 수는 1만 8164명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지주제를 매개로 조선의 농촌 사회를 지배하고 수탈하였다. 서산군 농회의 조직과 활동은 식민지 지주제의 특성과 의미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