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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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陽洪氏 |
영어공식명칭 | Namyang H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기범 |
본관 | 남양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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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집실마을 |
성씨 시조 | 홍은열 |
입향 시조 | 홍언수 |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홍언수(洪彦脩)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세거 성씨.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을 본관으로 하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세거 성씨 중 하나이다. 남양 홍씨는 크게 당홍계와 토홍계로 구분된다. 당홍계는 당나라에서 고구려에 파견한 홍천하(洪天河)에 연원을 두고, 토홍계는 고려 고종 때 금오위 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行)을 시조로 한다. 성주 지역의 남양 홍씨는 당홍계이다. 남양 홍씨 당홍계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많은 관료를 배출하였다.
남양 홍씨 당홍계의 선시조(先始祖)로 불리는 홍천하는 고구려 영류왕 때 당나라 태종이 파견한 8명의 학사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을 가르치던 홍천하는 고구려의 정국이 어려워지자 신라로 피신하였고, 문무왕 때 당성백(唐城伯)[현 경기도 화성시]에 봉하여졌다. 홍천하의 후손들은 10세에 걸쳐 신라에서 벼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를 고증하기 어려워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 태사에 올랐다고 하는 홍은열을 1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후 11세 홍규(洪奎)[?~1316]는 추성진력정안공신(推誠陳力定安功臣)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 상의첨의도감사(商議僉議都監事)에 올랐는데, 이때부터 본관의 명칭을 당성에서 남양으로 변경한 듯하다.
남양 홍씨의 성주 지역 입향조 홍언수는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아들인 첨사 홍승(洪勝), 사위인 판윤 박가권(朴可權)과 함께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계리 집실 마을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은 홍승을 낙남파조(落南派祖)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