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424 |
---|---|
한자 | 新安朱氏 |
영어공식명칭 | Sinan Jo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인배 |
본관 | 신안 - 중국 안휘성 휘주부 |
---|---|
입향지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
성씨 시조 | 주희 |
입향 시조 | 주광성 |
중국 남송의 주희(朱熹)를 시조로 하고, 주광성(朱光成)을 입향조로 하는 성주 지역의 세거 성씨
신안 주씨(新安朱氏)의 시조는 주희이며, 동국시조는 주잠(朱潛)이다. 주잠은 중국 송나라의 주자(朱子)의 증손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한림학사를 역임했다. 몽고의 침입으로 남송의 조정이 위기에 직면하자, 1224년(고종 11) 주잠이 2남 1녀와 문하생 섭공제(葉公濟) 등 7학사를 대동하고 고려 금성(錦城)으로 망명했다가 이후 능성현에 정착했다. 이후 후손들의 입향 세거지에 따라 관향이 능성(綾城), 전주(全州), 압해(押海) 등 여러 갈래였던 것을 조선 고종 때 원수부(元帥府) 기록국장이던 주석면(朱錫冕)이, 조선에 거주하는 주자(朱子)의 후손들은 주자의 원향(原鄕)인 신안(新安)으로 관향을 통일해줄 것을 상소하여 윤허를 얻음으로써 신안 주씨로 통일되었다.
주자의 25세 주광성[1714 ~1775]이 경상북도의 칠곡군 등지를 거쳐 성주군 용암면 지수동(智水洞)에 정착하여 성주의 입향조가 되었다.
청계공 주잠의 아들 여양공(汝陽公) 주여경(朱餘慶)은 고려 고종 때 악정(樂正)을 지내고 후에 밀직사(密直使)에 증직되었다. 주여경의 장자 문절공(文節公) 주열(朱悅)은 문과에 급제하여 판도판서(版圖判書)·부지밀직전법판서(副知密直典法判書)를 거쳐 지도첨의부사(知都僉議府事)를 지냈다. 이후 그의 아들 주인장(朱印長), 주인원(朱印遠), 주인환 등 3형제가 각각 장파(長派), 중파(仲派), 계파(季派) 등으로 파조되어 전국에 산거하였다. 성주 지역의 신안 주씨는 중파(仲派)의 후손들이다. 후손들은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의 지수와 마월 등지에 산거하고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중거리에 소재한 자양서당의 명칭은 주자의 별호에서 가져왔으며, 주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각(影閣)을 건립하여 그의 학문을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