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1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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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文學 |
영어공식명칭 | Seongju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후평1길 86-15[후평리 115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창환 |
창간 시기/일시 | 2001년 10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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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2016년 12월 30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월 10월 24일 - 『성주 문학』 창간호 출판 기념회 및 시 낭송회 개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5년 - 『성주 문학』 15호 출판 기념 시 낭송회 개최 |
소장처 | 성주문학회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후평1길 86-15[후평리 1155] |
제작|간행처 | 성주문학회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후평1길 86-15[후평리 1155]![]() |
성격 | 기관지 |
관련 인물 | 김순란|김기자|박덕희|도현세|배창환 |
창간인 | 김순란 |
발행인 | 김순란[창간호~3호, 11~16호]|김기자[4~10호] |
판형 | 가로 15㎝|세로 22㎝ |
총호수 | 16호 |
경상북도 성주의 성주문학회에서 발행한 종합 문학지 성격의 연간 기관지.
이 땅에 올바른 삶과 문학을 세워 간다는 성주문학회의 지향점 아래 성주군에 거주하는 회원과 출향 문인들의 시, 산문, 평론 작품들을 수록하고 회원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장이 되었다. 성주문학회에서 펼쳐 온 문학의 대중적 저변 확대를 위한 활동, 청소년 문예 진흥을 위한 활동, 성주군에서 각 문화 예술 단체와 문화 예술인들이 펼치는 의미 있는 활동의 성과와 창작물 등을 수렴하고 정리하여 수록하였다.
2000년 4월 19일 성주문학회를 창립하면서, 『성주 문학』 창간 준비호 성격의 회원 시 낭송 작품집 『시루떡 돌리던 날』을 출간하였다. 이후 1년여 활동의 성과를 모아 2001년 10월 24일 『성주 문학』 창간호를 출간하였다.
창간호의 크기는 가로 15㎝, 세로 22㎝이며, 342쪽 분량이다. 이후 크기는 변화가 거의 없었으나 분량은 최소 257쪽[16호]에서 최대 435쪽[4호]에 이른다. 6~9호는 표지를 가로 편집으로 하여 변화를 꾀하다가 10호부터 다시 세로 편집으로 되돌렸다.
『성주 문학』은 성주문학회 회원의 연간 작품집으로 시, 동화, 수필, 서평, 평론 등을 다양하게 수록하였다. 회원 중에 ‘성주 문학이 만난 올해의 시인[문화 인물]’을 선정하여 작품 세계를 집중적으로 재조명하는 특집을 구성하였다. 문인수, 김태수, 배창환, 이일향[시조], 리강룡[시조], 김기자, 박방희[시, 동시], 김순란[동화, 수필], 문차숙, 원무현, 안용태, 노태맹, 이기숙 시인 외에 최재우[마당극 창작·연출가], 이덕주[향토사학자] 등이 선정되었다. 또한 성주 학생 문학상 수상 작품집, 가야산 청소년 백일장 작품집과 성주 문화의 현장, 성주 문화의 현주소, 우리 고장 시 모음 등을 특집으로 고정 배치하였다. 성주 문화 예술인 인물 조명과 성주 내외의 저명한 평론가, 학자, 문화 예술인들의 특별 기고를 수록하기도 하였다[염무웅, 이하석, 김태수, 이덕주, 이상필, 정우락, 최재우, 박재범, 김충환 등]. 특히 성주 독자들의 작품을 계속 발굴하여 수록함으로써 문학의 대중적인 소통을 꾀하였으며, 성주의 고전 문학, 현대 문학과 성주의 살아 있는 창작 예술, 문화, 향토 역사 문화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내용을 수렴하고 확산하고자 하였다.
『성주 문학』은 창간호부터 문학과 예술 문화인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으며, 열악한 문학 내외적 환경 속에서도 16호까지 거르지 않고 꾸준히 발행하였다. 17호부터는 누구나 접근하기 좋도록 문턱을 더 낮추고 시대 변화에 맞게 책의 체재와 내용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 『성주, 사람과 문화』로 제호를 바꾸었다.
『성주 문학』은 옛 선인들의 시문(詩文) 전통과 단절되어 척박해진 문학적 환경과 지형 위에서 성주인의 삶의 애환을 담은 문학을 펼쳐 온 성주 문학인들의 창작품과 다양한 문학 활동을 담아내는 그릇이었으며, 성주 지역의 예술인, 문화인들의 의미 있는 성과를 받아 기록해 온 열린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