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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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堅幹 |
영어공식명칭 | I Gyeongan |
이칭/별칭 | 직경(直卿),여직(汝直),국헌(菊軒),문안(文安),이정란(李廷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정철 |
활동 시기/일시 | 1317년 3월 - 이견간 원나라 사신으로 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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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17년 3월 - 이견간 「봉사관동두견」 저술 |
몰년 시기/일시 | 1330년![]() |
출생지 | 이견간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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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이견간 단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
사당|배향지 | 문곡서원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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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용안서원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벽진 |
대표 관직 | 진현관 대제학 |
고려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직경(直卿) 혹은 여직(汝直), 호는 국헌(菊軒). 나중에 이름을 이정란(李廷蘭)으로 바꾸었다. 할아버지는 우사랑중(右唆郎中) 이당규(李唐揆)이고, 아버지는 예빈시 동정(禮賓寺同正) 이옹(李雍)이다.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견간(李堅幹)[?~1330]은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홈실[椧谷]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려 시대 원 간섭기에 고위 관료로 재직하였다. 충렬왕(忠烈王)·충선왕(忠宣王)·충숙왕(忠肅王) 3대에 걸쳐 통헌대부(通憲大夫)·민부전서(民部典書)·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진현관 대제학(進賢館大提學)·홍문관사(弘文館事)를 역임하였다. 이견간은 무엇보다 뛰어난 시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1317년(충숙왕 4) 3월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객관(客館)에 머물 때 「봉사관동두견(奉使關東杜鵑)」이라는 시를 지어 천하에 명성을 떨쳤고, 시의 끝 구절에 나오는 ‘산화(山花)’라는 말로 인하여 ‘산화 선생’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동시선(東詩選)』에서 이견간의 시구(詩句)를 뽑아 동방에서 두견을 읊은 시 사절(四絶) 중 가장 뛰어나다는 극찬을 하였다.
『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었다. 원나라에 갔을 때 태학사(太學士) 주방(周肪)과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講)하여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1330~?]도 “고려 중엽에 유자의 도를 따른 사람은 우탁의 『주역』과 이견간의 『춘추』”라고 말한 바 있다. 작품으로는 「산화선생일고(山花先生逸稿)」가 『벽진세고(碧珍世稿)』 1권에 실려 있다. 『벽진세고』는 벽진 이씨(碧珍李氏) 16인의 글과 행적을 수록한 책이다.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1777~1861]의 문인인 이광로(李光魯)[1828~1903]가 편집하여 1973년 후손 이만순(李萬淳)이 간행하였다.
묘는 본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현 경기도 과천시] 청계산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없어지고 후손이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 홈실 마을에 단(壇)을 모으고 문곡서당(汶谷書堂)을 세워 매년 한식(寒食)날 제사를 지낸다.
사후에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에 있는 문곡서원(汶谷書院)과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에 있는 용안서원(龍安書院)에 배향되었다. 시호(諡號)는 문안(文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