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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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孝思 |
영어공식명칭 | Yeo Hyosa |
이칭/별칭 | 술이(述而),월담(月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철 |
출생 시기/일시 | 16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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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54년 - 여효사 진사시에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686년![]() |
추모 시기/일시 | 1920년 - 여효사 후손들이 무너진 월담정사 중건 |
출생지 | 여효사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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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강학지 | 월담정사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광산리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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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가은서당 -
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 산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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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인|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대표 관직|경력 | 진사 |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술이(述而), 호는 월담(月潭). 할아버지는 생원인 여윤서(呂允恕)이고, 아버지는 증 승지(贈承旨)인 석촌(石村) 여찬(呂燦)이다. 어머니는 야로 송씨(冶爐宋氏)이고 아헌(啞軒) 송원기(宋遠器)의 딸이다. 4형제 중 셋째였다. 큰형은 생원인 서암(西巖) 여효증(呂孝曾)이며 글재주로 유명하였다. 둘째 형은 여효맹(呂孝孟)이고, 동생은 여효로(呂孝老)이다.
여효사(呂孝思)[1612~1686]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몸이 약하였는데 커서도 병이 많았다. 독서에 힘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하였다. 하지만 1654년(효종 5) 식년시(式年試) 3등으로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진사시에 합격한 후에 독서와 교육에 힘쓰며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나중에 성주 서쪽의 경치 좋은 곳에 띠집[띠로 지붕을 올린 집]을 짓고 기산정(箕山亭)이라 이름을 짓고 살다가, 여기에서 10여리 떨어진 쌍계(雙溪) 미타암(彌陀庵)에도 번갈아 살았다. 강학의 장소로 월담정사(月潭精舍)[경상북도 성주군 금수면 광산리 175-6번지]를 지었다. 후에 쇄락하여 사라졌지만 1920년에 지역의 사림이 중건하고 1969에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거처하는 곳에 송대 유학자인 소강절(邵康節)[1011~1077]과 주자(朱子)[1130~1200]의 시를 써 두고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는 것이나, 묘갈을 쓴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의 말로 보아서 역학(易學)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8권 5책[본집 4권 2책, 부록 4권 3책]의 『월담선생문집(月潭先生文集)』이 있다. 『성산세고(星山世稿)』에도 『월담집(月潭集)』이 포함되어 있다. 『성산세고』는 성산 여씨 6인의 문집 중 중요한 글과 부록으로 구성되었다. 여윤서의 『백미집(白眉集)』, 여찬의 『백촌집(石村集)』, 여작(呂焯)의 『호계집(虎溪集)』, 여효증의 『서암집(西巖集)』, 여효사의 『월담집』, 여문화(呂文和)의 『가계집(稼溪集)』이 그 내용이다. 여윤서의 아들이 여찬과 여작이고, 여찬의 아들이 여효증·여효사·여효로이며, 여문화는 여효로의 아들이다.
묘는 증산며곡(甑山旀谷) 임자원(壬坐原)에 있다.
가천 상류(上流)에 여효사가 지은 가은서당(可隱書堂)에 입향(入享)되었다. 응와 이원조가 묘갈(墓碣)을 썼다. 가은서당은 멸실되었는데, 1991년 후손과 유림이 본래 있던 곳 인근에 재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