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5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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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貫道 |
영어공식명칭 | Moon Gwando |
이칭/별칭 | 중기(重器),기헌(羈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세욱 |
출생 시기/일시 | 15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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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3년 - 문관도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문관도 칠포만호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문관도 하양현감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04년 - 문관도 경상순영중군 역임 |
몰년 시기/일시 | 1605년![]() |
출생지 | 문관도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
묘소|단소 | 문관도 묘소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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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남평 |
대표 관직 | 하양현감 |
조선 전기 성주 출신의 무신.
문관도(文貫道)[1550~1605]는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에서 전공을 올린 무관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중기(重器), 호는 기헌(羈軒). 문익점(文益漸)[1329~1398]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문서운(文瑞雲)이며, 어머니는 영광 정씨(靈光丁氏)이다. 부인은 송순례(宋純禮)의 딸 여산 송씨(礪山宋氏)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문관도는 1550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583년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칠포만호(漆浦萬戶)로 전공을 올렸다. 『난중잡록(亂中雜錄)』에는 『경상순영록』을 인용하여 “칠포만호 문관도는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순행(巡幸)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서쪽을 향해 재배하고 퍽 오랫동안 통곡하였는데, 호남과 영남에서는 그를 의리 있다고 여겼다.”라는 기록이 있다. 1597년(선조 30) 하양현감(河陽縣監)을 거쳐 1604년(선조 37) 경상순영중군(慶尙巡營中軍)이 되었으나 이듬해 8월 대구 영저(大邱營邸)에서 향년 56세로 순직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독음산(禿音山)[현 독용산] 동쪽을 바라보는 곳에 있다.
가선대부 호조참판(嘉善大夫戶曺參判)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