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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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長庚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Memorial Stone of I Janggyeong |
이칭/별칭 | 농서군공이장경신도비(隴西郡公李長庚 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3길 366-31[자산리 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은정 |
1850년 성주 이씨 중시조 이장경을 기리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에 세운 비.
이장경(李長庚)은 고려 시대 중기의 호족으로, 본관은 성주이며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성주 이씨(星州李氏)는 신라 말 이순유(李純由)가 시조로 이후 5대부터 이범(李凡)·이정거(李廷居)·이충경(李冲京)·이영(李瑩)·이효삼(李孝參)·이돈문(李敦文)·이득희(李得喜)·이장경으로 내려오면서 명문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순유의 12세손인 이장경은 이백년(李百年)·이천년(李千年)·이만년(李萬年)·이억년(李億年)[1266~?]·이조년(李兆年)[1269~1343] 등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쳤다. 이후 왕은 이장경을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지전리사사(知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하였다. 특히 손자 이승경(李承慶)[이천년의 둘째 아들]이 원나라에서 공을 세워 이장경이 농서군공(隴西郡公)으로 추대되었다. 중흥 시조 이장경이 농서군공이 되어 농서 이씨(隴西李氏)라고도 하였는데, 충렬왕 이후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주 이씨(星州李氏)라고 하게 되었다.
이장경 신도비(李長庚神道碑)는 각지의 후손들이 성주 이씨 중시조인 이장경의 성품과 공덕을 기리고 명문가로서의 가계를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1850년(철종 1)에 건립되었다.
이장경 신도비는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3길 366-31에 있다. 벽진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제913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초전면과 경계에서 안산영당(安山影堂)으로 안내하는 이정표를 따라 왼쪽 비탈길로 올라가면 길 안쪽 끝에 안산영당이 있다. 안산영당은 성주 이씨 선조들 중 나라에 공을 세운 13명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 건물로, 본래 이장경 신도비는 이장경의 묘와 함께 있었으나 그의 묘 터에 성주 세종 대왕 자 태실(星州世宗大王子胎室)이 들어서게 되면서 안산영당의 남쪽 편인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이장경 신도비의 전체 높이는 422㎝이고 비신은 높이 240㎝, 너비 97㎝이다. 귀부, 비신, 이수가 결합된 형태로 이수의 전면 중앙에는 쌍룡문을 새기고 하단에는 여의두문을 돌렸다. 귀부는 정교하게 새겼으며 귀두가 큰 편이다. 비좌 아래 귀부의 귀갑문은 육각형의 돋을 선으로 새겼는데 외곽에는 이중으로 새겼다.
이장경 신도비는 1850년(철종 1) 이종영이 세우고, 비명은 홍직필이, 글씨는 응와 이원조가 썼다.
이장경 신도비는 안산영당 앞 남쪽에 떨어져 세워져 있다. 신도비 외곽에는 보호각이 설치되어 관리되고 있으나 신도비에 대한 문화재 안내판이 설치되지 않아 문화재 정보를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