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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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伽倻山山城 |
영어공식명칭 | Gayasansanseong Fortress, Seongju |
이칭/별칭 | 용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정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 가야산 산성 대구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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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5월 22일![]() |
현 소재지 | 가야산 산성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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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가야산 산성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 |
성격 | 산성 |
양식 | 포곡식 |
크기(높이,길이,둘레) | 7.2㎞[전체 둘레] |
면적 | 2,1㎡ |
소유자 | 경상북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기념물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가야산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조선 시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의 문헌 자료에 가야산 산성(伽倻山山城)의 축성 기록이 남아 있으나, 처음 축조한 연대나 건립 경위 등은 명확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축 둘레가 1만 5935척[4.83㎞], 높이가 5척[1.52m]이고 성내에 샘이 10개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시 체찰사(體察使) 이원익이 조정의 명으로 승장(僧將) 신열을 시켜 개축하였고, 전쟁 중에는 인근 백성들의 피난처로 이용하였다고 전한다. 가야산 산성을 용기성(龍起城)이라고도 한다.
가야산 산성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2번지에 있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와 경상남도 합천군 일대에 있는 가야산(伽倻山) 정상인 칠불봉[해발 1,433m]의 동남쪽에 자리한다. 용기골의 좌우, 상아덤과 재골산(才骨山)의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다.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 동남쪽에 계곡을 끼고 축성되어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면적은 2,1㎡이며, 전체 둘레가 대략 7.2㎞ 정도인 석축 산성이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서 용기사지(用起寺址)로 올라가는 계곡을 따라 1㎞ 정도 되는 지점에 석축이 남아 있는데, 계곡을 가로질러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정상의 서쪽 능선을 따라 잔존한다. 일부 남아 있는 성벽은 직경 50㎝ 내외의 산돌[반상 화강암과 편마암 계통]을 이용하여 축성하였고, 일부는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성벽을 조성하였다.
가야산 산성은 대부분은 무너져 일부 구간에만 성벽이 남아 있다. 현존하고 있는 성벽은 대략 20m 정도로 평균 높이가 1.5m이다. 2000년 대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 당시 성의 둘레는 7,156㎞, 내부 면적은 2.1㎢로 보고되었다. 동서남북의 성문과 암문(暗門), 치성(雉城), 망루(望樓), 장대(將臺), 7개의 천과 1개의 우물이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성안에는 용기사지와 백운암(白雲庵) 터, 일요암(日曜庵) 터 등의 절터가 남아 있다. 2003년 5월 22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가야산 산성은 대가야의 이궁(離宮)으로 추정되는 삼국 시대의 석축 산성이다. 조선 숙종 때 독용산성(禿用山城)이 수축됨에 따라 퇴락하였으나, 산성의 구조와 당시 관방 유적으로서의 기능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