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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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矩孝子旌閭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산8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도영 |
건립 시기/일시 | 153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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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18년 - 박구 효자정려비 이전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425년 - 박구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3월 11일![]()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산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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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려비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10㎝[높이]|43㎝[너비]|16㎝[두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박구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35년에 세운 비.
정려(旌閭)란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집 앞에 정문(旌門)을 세워 기리던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시대 사람인 박구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박구(朴矩)[?~1425]는 효성이 지극한 자로,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무덤을 지키면서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정려비와 비각 모두 1535년(중종 30)에 세운 것으로 원래는 어머니의 묘소 근처인 백천(百川) 가에 있었으나 홍수로 인하여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1818년(순조 18)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구에서 성주로 가는 4차선 도로 옆 오른쪽으로 용암(龍巖)을 지나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에 위치한다. 명인정보고등학교에서 북서쪽으로 3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정려비의 형태는 높이 110㎝, 너비 43㎝, 두께 16㎝이고, 화강암을 사용했다.
정려비 정면에 ‘효자가정총제박구지려(孝子嘉靖總制朴矩之閭)’라 새겨져 있고, 왼쪽에 ‘숭정 기원 후 삼 임진 4월 일(崇禎紀元後三壬辰4月日)’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를 보호하기 위한 비각은 앞면 1칸, 옆면 1칸의 규모로,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을 올리고 있다. 비각의 앞면 윗부분에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그 밑으로는 비의 내력을 적어 놓은 상량문(上樑文)이 걸려 있으며, 왼측 윗부분에는 명종이 하사한 치제문(致祭文)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1999년 3월 11일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려비와 비각 모두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정려의 조사가 엄격하던 시대에 정표가 내려져 후세에 본보기가 될만하고, 당시의 풍속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향토적으로도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