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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1406
한자 初等學校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집필자 임승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7년 - 제주공립보통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09년 - 정의공립보통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1년 - 대정공립보통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년 - 서귀공립보통학교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3년 - 성산공립보통학교 설립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변천]

1. 구한말-일제 강점기

서귀포시 지역은 옛날부터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마을의 한문 서당 교육을 통해 기초 교육을 습득할 뿐, 다른 지방에 비해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1900년대 들어서면서 급변하는 시대적인 배경에 따라 이를 수용하는 새로운 교육 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07년 주성(州城)에는 제주 군수 윤원구에 의해 사립 의신 학교(義信學校)와 제주 공립 보통학교가 개교하였고, 1909년 정의 군수 장용견에 의해 성읍 마을에 의명 학교(義明學校), 대정 군수 김종하에 의해 안성 마을에 한일 학교(漢一學校)가 각각 개설하였다. 이들 학교의 교육은 종래의 서당 교육이 향교 교육에서 탈피, 신식 교육으로 전환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1920년대 이후에 이르러서야 서귀포 지역의 교육이 다시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일제는 문화 창달 정책으로 각급 보통학교를 세워 상승하는 조선인의 교육열에 부응하고자, 1919년 3․1운동 이후 1면 1교제로 보통학교 설치가 확대되면서 1919년 이후부터는 8개년 계획으로 3면 1개교에 이어 1면 1개교 비율로 보통학교를 설립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1920년에 서귀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고, 1923년에 성산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24년에는 남원에 서중 공립 보통학교, 1925년에 추자 공립 보통학교, 1927년에 좌면 공립 보통학교, 1929년에 안덕 공립 보통학교, 1937년에 성읍 공립 보통학교가 차례로 개설되었다. 특히 성읍 공립 보통학교의 경우, 표선면 성읍리에 소재했던 정의 보통학교를 표선면사무소 소재지인 표선리로 이설하자 새롭게 성읍 공립 보통학교를 개설하였던 것이다.

그 규모도 점차 확대되어 1927년에는 898명이던 제주 공립 보통학교 학생 수가 1938년에는 남학생 847명, 여학생 340명 모두 1,187명으로 증가하여 학급 규모도 17학급에 달하였다. 그 예로 1927년 당시 학생수가 92명으로 비교적 소규모였던 중문면 소재의 좌면 공립 보통학교의 경우 1938년에는 교명이 중문 공립 보통학교로 바뀌면서 여학생 29명을 포함하여 226명으로 학생수가 대폭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1938년 공포한 제3차 교육령에 의해 1면 2교제가 더 나아가 1면 3교제로 바뀌면서 학교 신설이 급증하였다.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하여 한국인에 대한 기초 교육을 강화하는 데 착안을 두었다. 이런 이유에서 1938년 공립으로는 효돈교가, 1940년 공립으로는 무릉교, 도순교가, 사립으로는 보성교가 개설되었다. 1941년에는 신산교에 이어, 1944년에 예래교 등이 개설되었다.

또한 보통학교의 증설이 불가능한 지역을 대상으로 초등 보통교육의 보급을 위해, 특히 일본어 습득을 위해 1934년에는 수업 연한 2년의 간이 학교를 설치하여 식민지 교육의 제도적 확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간이학교가 설치된 데에는 다른 무엇보다 당시 개량 서당을 통한 서당 교육의 왕성한 증가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1934년 5월 1일에 서귀면에 서호 간이 학교가 개교하였는데 당시 학생 수는 56명[남 41명, 여 15명]이었고, 1935년 6월 20일에 성산면에 난산 간이 학교가 개교하였는데 학생 수는 61명[남 61명]이었다. 1940년에 들어서면서 대정면에 구억 간이 학교, 1941년에는 남원면에 의귀 간이 학교가 설치되었으며, 1943년부터는 모두가 6년제 초등학교로 개편 승격되어, 도내 주요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모두 갖추어지게 되었다.

2. 현대

서귀포에서의 현대 교육은 1945년 광복 이후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광복 이후 현대 서귀포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들로는 광복 공간 3년 동안의 미군정, 1948년 4·3사건,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 수립, 1950년 6·25 전쟁, 1960년 4·19 혁명,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광복 이후 미군정기[1945-1948] 3년 동안 서귀포에서 가장 특이했던 교육 현상은 학교 설립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인데, 초등학교 설립이 그 대세를 이루었다.

이 시기의 학교 설립은 교육 행정 당국의 지원과 노력보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부지를 희사하거나 기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노동력까지 제공하는 등 주민들의 집단적인 후원과 연대 속에 가능했으며, 이러한 전통은 교육사적 측면에서 볼 때 자신의 손으로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려는 독립 학교 정신과 깊은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서귀포 출신 재일 제주인과 타 시도에 진출한 서귀포인들까지 학교 설립에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점을 볼 때 광복 이후의 학교 설립은 일제 식민지 탄압에서 억눌렸던 교육 열망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열기는 이미 해방 이전인 1920년 서귀 공립 보통학교[현 서귀포 초등학교]를 시작으로,1923년 성산 공립 보통학교[현 동남 초등학교], 1924년 남원 공립 보통학교[현 남원 초등학교], 1927년 좌면 공립 보통학교[현 중문 초등학교], 1938년 신효 공립 심상소학교[현 효돈 초등학교], 1940년 도순 공립 심상소학교[현 도순 초등학교], 1943년 서호 공립 학교[현 서호 초등학교], 1944년 상예 국민학교[현 예래 초등학교] 등 8개교의 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광복 이후 미군정 기간 동안에도 새로이 설립 인가를 받고 설립된 초등학교로는 1946년 서귀 남 국민학교[현 법환 초등학교], 1946년 강정 국민학교, 보목 국민학교, 토평 국민학교 등 4개교가 있다.

그러나 1946년 8월 1일 도 승격 이후 4·3 사건의 도화선이라 볼 수 있는 3·1절 발포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서귀포를 포함하여 제주 전체의 경제·정치·사회·문화뿐만 아니라 교육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당시 4·3 사건으로 인해 학교 피해 상황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서귀포를 포함한 남제주군 관내에서는 43개교의 학교가 전소되고, 2개교가 파손되는 등 당시 피해액만 대략 7억원으로 산출되었다. 결국 4·3 사건은 학교 시설을 직접적으로 소실시키거나, 아니면 간접적인 여러 이유로 인하여 학교들이 임시 또는 완전 폐교에 이르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후 4·3 사건을 통해 황폐화된 서귀포 교육의 상황은 6·25 전쟁의 여파로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1940년대 후반 서귀포의 교육은 정치적․사회적 혼란과 수난기였으나, 1950년대에 들어서는 서귀포 교육의 재건을 도모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법환 국민학교는 400여명의 재학생들이 손수 노동을 하여 교실을 증축하였고, 대정 국민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자발적인 폐품 모집 운동을 통해 교실 증축 기금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노력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위미 국민학교, 난산 국민학교, 덕수 국민학교 서광 분교장, 화산 초등학교 가시 분교장, 남원 국민학교 등이 복구되었다. 교육 시설에 대한 복구 활동은 나아가 새로운 학교 설립 운동으로 이어져 1949년 하례 국민학교 신례 분교장, 1950년 서귀 국민학교 서홍 분교장, 1955년 신도 국민학교 보흥 분교, 1958년 가파 국민학교 마라 분교장 등이 개교하였다.

1960년대 들어와서는 초등 의무 교육이 중요한 정책의 관심으로 부각되었는데, 1962년 토평 국민학교 영천 분교장, 1963년 서귀 북 국민학교, 창천 국민학교 상천 분교장, 1967년 서귀 중앙 국민학교, 1969년 보성 국민학교 신평 분교장, 도순 국민학교 하원 분교장 등이 설립되었다.

1980년대 이후 문교부에서는 국민 정신 교육과 함께 과학 기술 교육을 2대 시책으로 설정하고 초·중등 기초 과학 교육의 진흥을 위한 대책 수립 및 그 추진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199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지방 교육 자치제가 시행됨에 따라 과거의 남제주군 교육청을 통합한 제주도 서귀포 교육청이 설립되어 현재까지 서귀포 초등 교육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

2012년 4월 현재 서귀포의 초등 교육 기관으로는 1900년대 설립된 대정 초등학교, 표선 초등학교, 1920년대 설립된 서귀포 초등학교, 동남초등학교, 남원 초등학교, 안덕 초등학교, 중문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1930년대 설립된 성읍 초등학교, 효돈 초등학교, 위미 초등학교가 있다. 1940년대에는 서호 초등학교, 법환초등학교, 토평 초등학교, 보목 초등학교, 예래 초등학교, 도순 초등학교, 강정 초등학교, 성산 초등학교, 온평 초등학교, 신산 초등학교, 풍천 초등학교, 수산 초등학교, 시흥 초등학교, 의귀 초등학교, 하례 초등학교, 신례 초등학교, 태흥 초등학교, 흥산 초등학교, 무릉 초등학교, 보성 초등학교, 가파 초등학교, 사계 초등학교, 덕수 초등학교, 서광 초등학교, 창천 초등학교가 설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또한 1950년대 설립된 가파 초등학교 마라 분교장, 1960년대 설립된 서귀 중앙 초등학교, 서귀 북 초등학교, 대정 서 초등학교가 있고, 이 밖에 1970년대 설립된 서귀 서 초등학교, 하원 초등학교, 가마 초등학교, 토산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1990년대 설립된 새서귀 초등학교, 2000년대에 설립된 동홍초등학교, 한마음 초등학교가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통·폐합된 서귀포의 초등 교육 기관은 무릉 초등학교 보홍 분교장[1983], 서광 초등학교 광명 분교장[1988], 중문 초등학교 색달 분교장[1989], 보성 초등학교 신평 분교장·창천 초등학교 상천 분교장[1992], 무릉 초등학교 무릉 동 분교장[1994], 영락 초등학교·보성 초등학교 구억 분교장·신산 초등학교 난산 분교장[1995], 풍천 초등학교 신풍 분교장·안덕 초등학교 대평 분교장[1996], 신도 초등학교·신산 초등학교 삼달 분교장[1998], 하천 초등학교·화산 초등학교·가시 초등학교[2001], 영천 초등학교[2002], 서광 초등학교 동광 분교[2009]로 총 18개 초등 교육 기관이 통․폐합되었다.

[현황]

2012년 4월 현재 서귀포시에는 공립 초등학교 45개교가 있고, 사립 초등학교는 없다. 45개 학교의 총 학급 수는 456학급, 총 학생 수는 9,138명[남 4,776명, 여 4,362명], 총 교원 수는 712명, 총 일반 직원 수는 154명이다. 현재 서귀포 지역에서 100여 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 있는 학교로는 대정 초등학교표선 초등학교가 있다. 대정 초등학교는 2008년 10월 서귀포시에서 최초로 개교 100주년 행사를 거행하였으며 2009년에는 표선 초등학교 또한 학생을 비롯한 주변 지역 주민들이 개교 100주년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2.07 내용 수정 원고 내용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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