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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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斗生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일제 강점기 서귀포 출신의 민족 종교 항일 운동가.
본관은 고부. 1895년 중문면 강정리 5428번지에서 이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두생(李斗生)은 고향에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면서 1919년부터 2년간 보천교를 믿은 적이 있었다. 1935년 7월 하순경 전라남도 순천군 별량면 학산리에서 미륵교 지로사(指路師) 김형오가 제주도에 들어와 아라리 월전암에서 설교할 때 그의 영향으로 미륵교 신도가 되었다. 미륵교는 장차 미륵불이 나타나면 이상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는 신앙을 가진 종교로서 강일순이 창시한 증산교의 분파 종교였다.
이두생은 월전암에서 변호찬·양계초·송태옥 등과 함께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하던 중, 1940년 7월 28일 밤 양붕진의 권유에 의해 강증산 서거 기념제에 참가하여 일본은 망하고 새로운 지상 천국이 조선에 도래한다는 예언을 믿으며 항일 의식을 키웠다.
1942년에 이러한 활동 내용이 일제 당국에 의해 적발되어 이두생 등 핵심 신도들은 1943년 2월 16일 광주지법 목포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