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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산리 망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332
한자 杏山里-
영어공식명칭 Haengsanri Manggol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행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기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5년 11월 30일 - 『부강면지』 697면 수록
관련 지명 방축골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행산리 지도보기
성격 지명설화
주요 등장 인물 왕가|가토 기요마사|도둑
모티프 유형 지명유래담|임진왜란|침략|인물담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행산리에서 망골의 지명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행산리 망골」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마을로 가는 고개를 끊자 왕동골에 살던 왕가라는 사람이 망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5년 부강면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부강면지』에 수록되어 있다. 채록 상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내용]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는 왕동골이 있었다. 이곳에는 왕가라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의 뒤쪽으로 도둑골이 있어 도둑들이 왕가를 괴롭혀 왔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왕동골로 들어가는 고개를 끊자 금송아지가 울며 나갔다. 고갯길이 끊어진 왕가는 뒤쪽으로 도둑이 있어 망하고 말았다. 이후 이곳을 망골이라 하였다고 전하여진다. 다른 전설로는 지역의 지형이 망(網)처럼 생겨서 망골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모티프 분석]

「행산리 망골」은 지명이 지역에 살던 인물이 망하여서 유래한다는 것과 지형이 망처럼 생겨서 유래한다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임진왜란 당시 상황과 망골에 살던 사람이 망하였다는 점이 연계되면서 역사적 사건이 모티프로 하여 전설 내용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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