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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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務安朴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윤희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628년(인조 6) - 박선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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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708년(숙종 34) - 박선일 사망 |
입향 시기/일시 | 1600년대 중반 - 박선일|박행일 |
본관 | 무안박씨 - 전라남도 무안군 |
입향지 | 무안박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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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무안박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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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무안박씨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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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세장지 | 열녀 광산김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 산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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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박진승 |
입향 시조 | 박선일|박행일 |
박진승을 시조로 하고 박선일과 박행일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박선일(朴善一)[1628~1708]과 박행일(朴行一)을 입향조로 하는 무안박씨 상서공파(尙書公派)가 16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에 정착하여 2019년 현재까지 세거지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무안박씨의 시조(始祖)는 박진승(朴進昇)이다.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여섯째인 완산대군 박언화(朴彦華)의 5세손이다.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감제주(國子監祭酒)를 지내고 공(功)을 세워 무안군(務安君)에 봉해졌다. 무안을 하사하여 후손들이 본관(本貫)[시조(始祖)가 난 곳]을 무안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무안박씨의 입향조는 박선일과 박행일 형제이다. 형제는 원래 무안박씨 상서공파(尙書公派)의 세거지인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에서 살았다. 네 형제 중 맏형 박홍일(朴洪一)만이 당진에 남고 박함일(朴咸一), 박선일, 박행일 3형제는 연기 지역으로 옮겨 와 살았다 한다. 박함일의 처가 연동면의 토성(土姓)이며 대성(大姓)인 경주김씨이고 박선일의 처가 응암리에 세거하던 청주한씨인 사실로 미루어 무안박씨는 처가와의 인연으로 응암리에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박선일은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중추부사절충장군(中樞府使折衝將軍)을 지냈다.
1996년 발행한 『동면지』에는 응암리에 거주하는 무안박씨가 15가구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에 거주하는 무안박씨는 1985년 22가구 119명, 2000년에는 31가구 95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에 거주하는 무안박씨는 322명이다.
박선일과 관련된 일화가 전하여진다. 박선일이 부모상을 당했을 때 흰 제비가 날아와 집을 짓고 낳은 새끼가 흰색이었다 하여 박선일의 지극한 효성을 칭송하였다 한다. 또한 박선일과 후손 박장(朴場), 박기정(朴基鼎) 처 광산김씨(光山金氏), 박동환(朴東煥) 등의 효행이 『연기지』에 기록되어 있다.
연동면 응암리에는 1877년(고종 14)에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고 1952년 건립된 열녀 광산김씨 정려가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2호로 지정된 열녀 광산김씨 정려는 박기정 처 광산김씨의 열행(㤠行)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