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700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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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穆祖大王舊居遺址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상수 |
건립 시기/일시 | 1899년(광무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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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목조대왕 구거 유지비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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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기념비 |
관련 인물 | 이안사|이양무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87.0(139.0)㎝×46.7㎝×24.2㎝ |
소유자 | 삼척시 |
관리자 | 삼척시 |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조선태조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와 4대조 목조이안사가 살던 옛터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
조선시대 태조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와 4대조 목조이안사가 살던 옛터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목조가 전주에서 이곳으로 온 사실과 함께 당시 목조가 살던 집터·밭·우물이 유적으로 남아 있어 그 위치를 비정할 수 있다. 목조의 외향이고 선대의 묘가 안치되었다 하여 군(郡)에서 부(府)로 읍호(邑號)가 승격되었으며, 홍서대(紅犀帶)를 하사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1899년 7월 11일에 특진관 박기양(朴箕陽)[1856~1932]을 삼척의 활기동 비문 서사관으로 임명하였으며, 비석 제작을 위하여 사용하는 돌은 삼척시에서 캘 수 있고 돌의 품질이 쓸 만하다고 하여 삼척군수가 기일에 앞서 돌을 캐내 다듬어 놓을 것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비석에는 이와 달리 자헌대부 장례원경신 조병필(趙秉弼)[1835~1908]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비석 형태는 뚜껑돌[개석(蓋石)]이 팔작지붕 형태인 팔작옥개석(八作屋蓋石)이고, 비좌는 사각형[방형(方形)]의 지대석 위에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다. 1899년(광무 3)에 건립되었다. 크기는 높이 187.0(139.0)㎝×너비 46.7㎝×두께 24.2㎝이다.
전면:어제목조대왕구거유지(御製穆祖大王舊居遺址)
후면:어제유동개어로동동산지간이도리략균왈활기목조구거지지야자전주사우시야원종이래자백칠십여가방근유려의기유예이무능언고사유상전댁기댁전원초상존국초승군위부사서대장지부사전이위이목조외향이공비시기무소거의부유차이수자의기위묘소여구기지향야우위가징신자의벌석이수지근기기음용식선적이조후래운이 광무삼년기해십일월일 정이품자헌대부장례원경신조병필봉칙근서(御製有洞介於蘆洞東山之間而道里略均曰活耆穆祖舊居之址也自全州徙于是也願從而來者百七十與家旁近遺黎宜其遺裔而無能言古事惟相傳宅基宅田垣礎尙存國初陞郡爲府賜犀帶藏之府司傳以爲以穆祖外鄕而恐非是旣無所據矣夫有此異數者意其爲墓所與舊基之鄕也尤爲可徵信者矣伐石而樹之謹記其陰用識先蹟以詔後來云爾 光武三年己亥十一月日 正二品資憲大夫掌禮院卿臣趙秉弼奉勅謹書)
비석은 현재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비의 앞면에는 다소 큰 전서체 글씨로 ‘어제목조대왕구거유지(御製穆祖大王舊居遺址)’라 새겼으며, 뒷면에는 자헌대부 장례원경신 조병필이 고종의 칙명을 받들어 쓴 비음(碑陰)이 새겨져 있다.
목조대왕 구거 유지비는 조선을 개창한 태조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5대조 이양무(李陽茂)[?~1231]와 4대조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1274]가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서 살던 옛터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으로 기념할 만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