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1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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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景幼稚園 |
영어의미역 | Ganggyeong Kindergarte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형목 |
1920년대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었던 유아 교육 기관.
1920년대 중반부터 각 지역 사회단체는 주요 활동 영역의 하나로 유치원설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유치원교육은 3세 국민교육의 대명사로서 인식되는 분위기였는데, 이는 유아기 교육이 교육적인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1920년대 후반 논산지역에는 영화(永化)유치원·만동(萬東)유치원·강경유치원이 유치원교육을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유치원교육은 1929년 10월 강경시장에서 개최된 영화유치원·만동유치원·강경유치원 연합운동회 개최를 계기로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특히 사애리시는 논산유치원 설립 당시 150원을 의연하는 등 유치원교육 보급에 열성적이었다.
개신교는 선교 사업 일환으로 대한제국 때부터 유치원 설립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강경감리교회 전도사 사애리시(史愛理施, Alice J. Sharp)가 1921년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1921년 5월 개원하였다.
강경유치원의 개원 초기 원아는 30명이었고, 그 가운데 2명은 일본인이었다. 설립자 겸 원장은 사애리시, 교사는 김복희(金福喜)였다. 교사의 열성적인 지도는 학부형들로 하여금 유치원교육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사애리시는 간친회를 개최하는 등 유치원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강경여자수양회도 유치원 운영을 지원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1933년 경비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한 음악회는 지역 유지들의 경쟁적인 참여로 성황을 이루었다. 연희전문학교 음악 교수 현제명(玄濟明) 등 음악계 거성 30여 명이 찬조 출연하였다. 1938년 3월 19일 제10회 보육증서 수료식에서 26명이 보육증서를 받았다. 품행이 단정하고 성적이 우수한 원아 2명에게는 도지사상을 수여하였다. 당시 원장은 최종순(崔鍾淳)이었다.
강경유치원은 활발한 과외 활동으로 주민들의 정서 함양은 물론 유치원교육에 대한 관심을 촉진함으로써 문화운동 저변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