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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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應聖 |
영어음역 | Han Eungseong |
이칭/별칭 | 경기,귀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한응성은 장성한 뒤에는 처가인 순창 귀미(龜尾)로 옮겨 살았다. 호가 귀와(龜窩)인 것은 귀미에서 따온 것이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귀와.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의 고손자이고, 대호군(大護軍) 한축(韓軸)의 아들이다.
한응성은 중봉(重峰)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 조헌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노비 등 수십 명을 거느리고 금산으로 출전하였다.
적의 세력이 강하자 조헌은 앞일을 예측하고 이르기를 “오늘 나는 이미 죽음을 결심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는 “인(仁)을 이루고 의(義)를 취함은 곧 나의 본 뜻입니다.”하고 분격하였다.
한응성은 곧바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 10명을 베고, 700명의 의사와 함께 순절하였다. 이때 한응성의 나이 36세였다. 노복인 부협(夫脅)이 시신을 거두어 순창 귀미로 돌아와 장사를 지냈다.
조정에서 충신의 정려를 내렸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노동에 정려가 있다.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에 제향되었으며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증직(贈職)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