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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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弼男 |
영어음역 | Park Pilnam |
이칭/별칭 | 익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동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익서(翼瑞). 부사(府使) 박호(朴瑚)의 고손자이며, 참봉(參奉) 박인손(朴仁遜)의 아들이다.
박필남은 힘이 좋고 일찍부터 병서에 통달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적병들이 숙성령을 넘어오자, 의병을 거느리고 용추동(龍湫洞)으로 들어갔다. 박필남은 낮에는 잠복하였다가 밤에 적들이 잠들자 기습하여 60여 명의 적을 베었다. 또 궁장현(弓藏峴)에서 적병 10여 명을 물리쳤다.
또 궁장의 협곡에 매복하고 있다가 진사(進士) 조경남(趙慶男)과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을 따라 적진에 뛰어들어 적병 수십 명을 베었다. 적이 그들을 포위하자 적의 칼을 빼앗아 적병 56명을 무찔러, 감히 적이 숙성령을 넘어오지 못하였다.
정유재란 때의 공으로 판관(判官)에 제수되었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