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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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里 |
영어음역 | Ch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정만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초리는 문화유씨의 세가 큰 초리와 사방이 대밭으로 둘러싸여 은신처로 알려진 서당리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유씨 시조 유차달이 황해도 문화현 초리방에서 태어났는데 시조의 탄생지 이름을 따서 초리라고 명명했다는 설과 산이 적고 들이 넓어 풀이 많은 관계로 초리라 했다는 설이 있다.
초리는 1715년 곡성군 고달면 죽림에서 이주해 온 유원화와 그의 가족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되었다. 1966년 면내 최초로 큰 교량을 가설하였으며 농업협동조합 창고를 건립하였다.
1967년 문화유씨의 후손 유병열이 1,485㎡의 부지를 희사하고 주민들의 성금을 모아 수지남초동학교를 설립하였다. 1980년에는 대통령 하사금을 지원 받아 마을회관을 신축하였다.
서당리는 고려 말 공민왕 때 나귀를 타고 온 선비 진주강씨가 고요하고 적막한 이곳에 터를 잡고 글쓰기를 필생의 업으로 삼아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그후 진주하씨가 이주해 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사방이 대밭으로 둘러싸여 귀양객의 은신처나 피난처로 알려져 있었으며, 서생이나 유생들이 글을 쓰고 책을 읽기에 알맞아 서당이 번창한 것이 전래되어 서당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초리는 용두산 자락에 위치하며 마을 앞으로 수지천이 흐른다. 서당리는 부채 모양으로 둘러싼 대밭과 산등성이 속에 있다.
2007년 기준 면적은 188.3㏊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50세대에 115명(남자 56명, 여자 5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초리의 주민들은 수도작 위주의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축산업과 상추 등의 시설 원예를 겸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초리진료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