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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140
한자 安城面
영어공식명칭 Anseong-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명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개설
성격 행정 구역
면적 97.27㎢
가구수 2,259가구
인구[남/여] 4,477명[남 2,207명/여 2,270명]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에 속하는 법정면.

[개설]

무주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은 두문산[1,051m], 덕유산[1,614m] 등을 경계로 설천면·경상남도 거창군, 서쪽으로 진안군 동향면, 남쪽은 장수군 계북면, 북쪽은 조두치[590m] 등을 경계로 적상면과 인접한다.

[명칭 유래]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 지역으로 안성소(安城所)가 있어 ‘안성(安城)’이라고 하였다는 설과, 덕유산의 품에 안겨 언제나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 하여 ‘안성’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삼한 시대에는 마한, 백제 때는 진내군, 통일 신라 때는 진례군, 고려 때는 금주군 또는 부리현(富利縣)에 속하였다. 안성면에 있었던 안성소는 본래 대곡소(大谷所), 횡천소(橫川所)와 함께 부리현에 속하였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32 우왕 10년인 1384년 8월에 "왜구가 영동현(永同縣)·청산현(靑山縣)·안읍현(安邑縣) 등과 은천소(銀川所)를 노략질하고 또한 전라도 안성소·천잠소(天蚕所) 두 곳과 응령역(應嶺驛)·소천역(所川驛) 등을 노략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금산군에 속하였으며, 1674년(현종 15) 적상산 사고와 관련하여 무주현무주 도호부(茂朱都護府)로 승격하면서 횡천면과 함께 무주 도호부에 속하였고, 일안면과 이안면 및 횡천면으로 개편되었다. 『적성지(赤城誌)』에 의하면 현재의 안성면은 일안면(一安面)과 이안면(二安面)에 해당한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이들 두 면을 중심으로 무주군 안성면으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안성면은 소백산맥의 덕유산 서사면 분지에 위치하고, 면의 동부와 남부는 산지가 발달하며 덕유산 국립 공원무주 구천동이 있다. 군내에서 가장 넓게 평야가 발달하여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동부와 남부에 덕유산을 비롯한 해발 고도 1,300~1,600여m의 산지가 솟아 있는데 이 일대가 덕유산 국립 공원이다. 덕유산의 북서쪽 사면에는 해발 고도 400~550m의 넓은 분지가 전개되며 금강(錦江)의 상류인 구리향천(九里鄕川)이 발원한다. 분지의 지질은 화강 암질 편마암이 심층 풍화한 뒤, 구리향천에 의해 개석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3단의 단구상(段丘狀)을 이룬다. 한국 남서부 내륙 분지의 형성 과정을 보여 주는 모식적인 분지이다.

[현황]

안성면의 관할 행정 구역은 8개 법정리, 36개 행정리, 61개 자연 마을이다. 안성면에 속한 법정리는 장기리, 공진리, 죽천리, 공정리, 덕산리, 금평리, 사전리, 진도리이다. 면적은 97.27㎢이며, 무주군 전체 면적에서 15.4%를 점한다. 경지 16.73㎢[답 60%, 전 40%], 임야 72.75㎢, 기타 7.79㎢로 임야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2017년 4월 현재 2,259가구, 4,477명[남 2,207명/여 2,27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북쪽에는 무주 군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를 이룬다. 쌀과 보리 농사 외에 잎담배, 인삼, 약초, 고랭지 채소가 많이 생산되며 이들은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서 집산·유통된다. 주요 기관으로 공공 기관 6개소가 있고 학교는 안성 초등학교, 안성 중·고등학교, 푸른꿈 고등학교가 있다. 남동쪽에 용추 폭포칠연 폭포가 있고, 무주 구천동(茂州九千洞)의 남쪽 입구에 해당하므로 관광지로도 발전하고 있다.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에는 5개 담당 부서에 면장과 부면장 외에 24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칠연 의총(七淵義塚)[전라북도 기념물 제27호], 원통사 터[전라북도 기념물 제67호], 연안 이씨 이유호 가전 고문서(延安李氏李有浩家傳古文書)[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31호]가 있으며, 그 외에 죽계 서원(竹溪書院), 도산 서원(道山書院), 도남사(道南祠), 도남재(道南齋)가 있다. 교통은 진안-안천-무주 간 구도로, 동향-안성 간 도로, 진안-장계-무주 간 국도가 통과하여 매우 편리하다. 특히 1997년에는 안성을 거쳐 전주로 연결되는 고속화 도로가 개설되었다.

안성면에 속한 29개 자연 마을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받드는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그 대상인 누석단(累石壇)·산신당·당산·입석·당산수 등은 부분적으로 없어지기도 하였지만 아직도 보전되어 오는 것이 많다. 덕산리 덕곡 마을은 마을 뒤 덕유산 황골에 있는 풍암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하고 정월 보름날 자정에 산신제와 같은 제축을 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의 재앙을 막고 풍년이 들게 하며 가축을 보호해 달라는 축문과 소지를 올린다. 제비 마련이나 축제 의식은 일반 동제에 준한다. 이 풍암에는 아들 낳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적으로 축원을 드리기도 한다.

죽전리의 명천리 장군 바위에는 아기장수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이곳에서는 총명하고 힘이 센 소년이 홀어머니와 살았는데, 소년이 장차 큰 장수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역적이 될까 염려한 조정에서 이 소년을 찾으려 하자 소년은 어머니게게 좁쌀 한 말과 수수 한 말을 구해 달라 하고는, 100일 동안 자신이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고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 밑 굴속으로 가서 무예를 닦았다. 조정에서 내려온 군졸들은 어머니를 묶어 놓고 살점을 도려내 가며 아들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윽박질렀다. 군졸들이 끝내 입을 열지 않는 어머니를 죽이기로 결정하자, 어머니는 약속 날짜를 하루 남겨 놓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아들의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밤에 몰래 바위 밑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좁쌀 한 말과 수수 한 말이 수만의 군사로 둔갑하려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소년은 잡히는 신세가 된 것이 분하고 원통하여 잡혀 가면서 머리로 바위를 들이받아 지금도 그 자국이 장수 바위에 남아 있으며,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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