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1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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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嶺南樓 |
이칭/별칭 | 영남루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4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동표 |
건립 시기/일시 | 14세기경 - 밀양 영남루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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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44년 - 밀양 영남루 재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밀양 영남루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보물 지정 번호 삭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3년 12월 28일 - 밀양 영남루 국보 승격 |
현 소재지 | 밀양 영남루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40]![]() |
원소재지 | 영남루 -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40] |
성격 | 누각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4칸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밀양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조선 후기 누각.
밀양 영남루(密陽嶺南樓)는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밀양도호부 객사의 부속 건축물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영남사(嶺南寺)에 부속된 작은 누각을 1365년(공민왕 14) 밀성군수로 부임한 김주(金湊)[1339~1404]가 크게 중수하면서 영남루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밀양 영남루는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40번지에 있다. 밀양읍성 내 있으며, 밀양강을 접한 곳에 있다. 밀양 영남루 주위에는 단군을 비롯한 우리나라 역대 8왕조의 시조 위패를 봉안한 밀양 천진궁, 아랑낭자의 전설을 간직한 아랑사, 500여 년을 이어 온 밀양읍성, 천년 고찰 무봉사 등이 있다.
밀양 영남루는 고려 이래 사찰의 부속 건물이었지만, 주로 빈객들의 유연(遊宴)과 시인 묵객들의 음영(吟詠) 장소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밀양부사 안질(安質)이 처음으로 크게 본루를 중수하였고, 서편에 따로 작은 누각을 하나 더 세워 ‘소루(召樓)’라고 하였다. 이후 부사 이충걸(李忠傑)이 소루를 중수 개조하여 임경당(臨鏡堂)이라 불렀다가 뒷날 침류당(枕流堂)으로 이름을 고쳤다. 연산군 때 부사 김영추(金永錘)가 본루 동북편 모서리에 망호당(望湖堂)이라는 부속 건물을 세워 빈객들의 숙소로 삼았는데, 뒷날 본루 남쪽으로 옮겨서 능파당(凌波堂)이라 하였다. 이로써 영남루는 좌우익 날개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모의 누각을 갖추었다. 영남루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이후에도 여러 번 화재를 입었으나, 역대 밀양부사들이 계속 중수를 거듭하며 보존하여 왔다. 1834년(순조 34) 경내 모든 건물이 전소된 후 부임한 부사 이인재(李寅在)가 1844년(헌종 10)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전면 개창하였다. 1894년 밀양의 동학농민운동 때 일본군의 주둔지로 강점당하였고, 1920년대 중반 한때 나병 환자의 수용소가 되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 점차 정비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밀양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의 2층 본루가 있고, 좌우에 3칸의 능파각과 침류각이 있다.
밀양 영남루는 1960년 경내 환경 정비 후, 1963년 1월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고, 1988년 이후 1996년까지 4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쳤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2023년 12월 28일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밀양 영남루에는 이황, 이색 등 밀양 영남루를 거쳐 간 여러 문사와 명현들의 시문 편액이 남아 있다.
밀양 영남루는 경상남도 밀양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목조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