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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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洙 |
영어공식명칭 | Son Soo |
이칭/별칭 | 도원(道源),사노(師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현라 |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문신.
손수(孫洙)[?~1522]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도원(道源), 사노(師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생원 손경량(孫敬良), 할아버지는 손세현(孫世賢), 아버지는 손희준(孫希俊)이고,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부인은 진양강씨(晉陽姜氏)이고, 아들은 손천석(孫天錫)이다.
손수의 1509년(중종 4) 정시(庭試)에 합격하고, 1510년(중종 5)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1514년(중종 9)에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에 제수되고, 1517년(중종 12)에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 등을 지냈다.
손수가 홍문관에 재직 중 경연에서 『근사록(近思錄)』,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 『대학연의(大學衍義)』 등을 강연하였으며, 국왕이 가야 할 바른 길에 대하여 중국의 고사를 예로 들면서 간언을 많이 하였다. 손수는 문장도 잘 지었다고 한다.
1520년(중종 15) 중종이 문신들을 대상으로 시 짓기 시험을 하였는데,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 채침(蔡忱)이 으뜸으로 뽑혀 1자급(資級)을 하사받았고, 손수는 그다음으로 뽑혀 아마(兒馬) 1필(匹)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1521년에는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손수는 1522년(중종 17) 이조정랑 재임 중 사망하였는데, 중종이 전교하기를, “손수는 쓸모 있는 사람으로 대간·시종을 오래 지냈는데, 지금 손수의 병사 소식을 들으니 매우 애통하다. 속히 부의를 보내라.”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