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273
한자 三文洞
영어공식명칭 Sammun-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기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삼문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삼문리에서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삼문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31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면 삼문리에서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삼문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삼문리에서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면적 2.93㎢
가구수 8,259가구
인구[남/여] 20,120명[남 9,658명|여 10,462명]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삼문동(三文洞)은 밀양시 동 지역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밀양강이 북쪽과 서쪽, 남쪽을 따라 곡류하여 반도 모습의 지형을 이루었으나 동쪽에 새로운 유로가 만들어지면서 하중도 형태가 되었다. 북쪽으로 내일동내이동, 서쪽과 남쪽으로 부북면 제대리전사포리와 마주 보고 있다. 동쪽으로 용두보를 사이에 두고 가곡동과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삼문동의 ‘삼림’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노하리(路下里), 남부리를 합쳐 처음 생긴 지명이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에 노하리가 남문 바깥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노하리 일대는 사질토의 퇴적지로 이루어진 곳으로 사문동(沙門洞)으로 불렀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밀양부지도」에 ‘사문동 장림’으로 기재되어 있다. ‘사문’ 지명이 신라 때에 있던 영남사(嶺南寺)의 ‘사문(沙門)’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하며, ‘삼문’ 지명은 ‘사문’이 변용되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삼문동 지역은 조선시대 부내면(府內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부내면의 남부리, 노하리 각 일부를 합쳐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삼문리가 개설되었다. 1918년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어 밀양군 밀양면 삼문리가 되었다. 1931년 4월 1일 밀양면이 밀양읍으로 승격되어 밀양군 밀양읍 삼문리가 되었다. 1989년 1월 1일 밀양읍이 밀양시로 승격되어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이 되었다.

동의 대부분은 하천 퇴적으로 인한 사질토로 구성되어 있어 조선 후기까지도 민가는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밀양부지도」[국립중앙도서관 소장]와 『해동지도(海東地圖)』를 비롯한 대부분 군현지도에 가옥은 그려져 있지 않고 율림(栗林)과 함께 태을정(太乙亭), 사장(射場)만 묘사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구한말 용두보가 설치되고 제방이 축조되고서 농사가 이루어지면서부터이다. 일제강점기가곡동밀양역이 세워지면서 삼문동으로 시가지가 확장되었다.

[자연환경]

사방이 밀양강 유로로 둘러싸여 있어 도시 속의 섬 모습을 갖추고 있다. 원래 동쪽의 용두산 산지가 서쪽으로 이어진 산줄기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밀양강의 퇴적 사면에 위치하여 충적지가 형성된 곳이다. 저습지로 갈대밭이 조성되어 있었고 방조림으로 율림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제방이 축조되면서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2.93㎢ 면적에 8,259세대, 2만 120명[남자 9,658명, 여자 1만 46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북쪽으로 내일동, 남쪽으로 밀양역으로 이어져 교통이 편리하여지면서 인구가 증가하여 밀양의 교육과 행정기관이 들어섰다. 밀양시보건소, 김해세무서 밀양지서, 삼문동우체국, 삼문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1908년 세워진 밀양초등학교, 1945년 세워진 밀양중학교, 1953년 세워진 밀양여자중학교가 있다. 2006년에는 미리벌초등학교가 세워졌다. 제방을 따라 밀양강 둔치와 장미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