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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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川-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남동걸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등 인천 일원에서 부르던 「아리랑」의 한 형태.
「아리랑」은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본래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때는 주로 두레 노래로 불렸다. 따라서 구술과 암기에 의한 전승 또는 자연적 습득이라는 민속성 이외에 지역 공동체 집단의 소산이라는 민속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집단성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비록 그 노랫말이 개인적인 넋두리의 비중이 컸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근세의 민족사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천 아리랑」 역시 인천의 부두 노동자들이 불렀던 노동요이자 생성 당시의 시대성을 반영한 항일 민요라고 할 수 있다.
1894년 일본 동경의 박문관에서 펴낸 홍석현(洪錫鉉)의 『신찬 조선 회화(新撰朝鮮會話)』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허경진이 발굴하여 『동방학지』 제115호에 소개하여 처음 알려졌다. 이를 다시 조우성이 『인천 이야기 100장면』에 수록하였다.
전통 민요인 「아리랑」 가락은 그대로 불리면서 가사는 일본인 등쌀에 견디지 못하는 인천 주민들의 아픈 마음을 담아 고친 것으로 보인다.
인천 제물포 모두 살기 좋아도/왜인 위세로 난 못 살겠네 흥//에구 대구 흥/단 둘이만 사자나/에구 대구 흥 셩하로다 흥//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오/아라랑 알션 아라리아(모두 슬픈 듯 부를 것)//산도 싫고 물도 싫고/누굴 바라고 여기 왔나/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오/아라랑 알션 아라리아(한 번 더 부를 것)//
언제 생겨났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지금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아리랑」은 원래 노동요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차츰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리랑」 속에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읽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인천 아리랑」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를 비롯한 인천 지역에는 현재 거의 불리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최근 인천 출신 국문학자인 허경진에 의해 처음 발굴 소개된 것이다.
「아리랑」은 단순히 단일한 장르의 민요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지닌 음악사·문학사·예술사의 거봉으로서, 우리 민족의 원초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천 아리랑」은 이러한 아리랑의 전통을 이어 왔다고 볼 수 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한국 ‘아리랑’ 사(史)에 ‘인천’이라는 지역을 편입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