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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학생 총 연맹 인천 지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626
한자 全國學生總聯盟仁川支部
이칭/별칭 전학련,전국 학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단체
설립자 이철승
설립 시기/일시 1946년 7월 31일연표보기 - 전국 학생 총 연맹 결성대회 개최
해체 시기/일시 1949년 12월 29일연표보기 - 전국 학생 총 연맹 해체
최초 설립지 전국 학생 총 연맹 결성 대회장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주소 변경 이력 전국 학생 총 연맹 본부 사무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정의]

1946년 7월 31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결성된 전국학생총연맹 소속 지부.

[개설]

전국 학생 총 연맹은 1946년 7월 31일 발족하여 1949년 12월 29일 해체된 우익 학생 운동 단체이다.

전국 학생 총 연맹은 1946년 7월 12일 반탁 학생 총 연맹을 비롯한 13개 학생 단체와 28개교 대표 138명이 ‘전국 학생 총 연맹 결성 발기회’를 개최한 후, 1947년 7월 31일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중앙 예배당에서 ‘전국 학생 총 연맹 결성 대회’를 개최하며 발족하였다. 결성 대회에는 전국 학생 대표 2천여 명과 함께 이승만을 비롯, 정인보, 김성수, 이극로, 정준모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의장단은 대표 의장에 이철승[고려 대학교], 의장에 채문식[서울 대학교]·박용만[유학생 동맹] 등이 선정되었다.

1948년 9월 10일, 위원장 이철승이 총선거에 출마해 학생 신분을 잃게 되자, 부위원장이었던 손도심이 독자적으로 위원장이 됨으로써 이철승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며 전국 학생 총 연맹은 둘로 나뉘게 되었다. 전국 학생 총 연맹은 1949년 11월 21일과 11월 22일 이틀간 열린 제5회 전국 대의원 대회에서 학생 운동의 일원화를 위해 발전적 해소를 하여 학도 호국단으로 통합하자는 안을 결의하고 문교장관에게 전국 학생 총 연맹 관계자들을 학도 호국단 간부로 등용할 것과 신분 보장 등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결의에 대해 1949년 12월 3일, 서울특별시 학도 호국단은 각 중등학교장에게 전국 학생 총 연맹을 학도 호국단 대원으로 포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국 학생 총 연맹은 1949년 12월 26일, 법령 제55호 ‘정당에 관한 규칙’에 의해 단체 등록이 취소되면서 해체되었다.

[설립 목적]

전국 학생 총 연맹의 인천 지부는 민족진영 학생들의 대동단결을 통해 자주 독립 촉성과 민족 문화 건설을 목표로 한 효과적인 학생 운동을 전개하고 국제 공산주의 노선에 대항하고자 설립하였다.

[변천]

전국 학생 총 연맹 인천 지부는 1946년 7월 31일 발족하였다. 조직은 총무부, 조직부, 선전부, 문화부, 동원부, 여학생부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임원진은 초대 회장이 중앙 대학교 위인환, 부위원장이 단국 대학교 이헌상이었고, 2대 위원장은 이헌상, 부위원장은 이계송[인천 상업 학교], 3대 위원장은 이계송, 부위원장은 정국로[동산 중학교]였다.

[주요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전국 학생 총 연맹 인천지부는 1947년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 소재 인천 공설 운동장에서 개최된 3․1절 기념 행사에서 위원장 위인환을 비롯한 이계송, 이은택, 차갑남, 김인식, 성호경 등이 단지(斷指)하여 ‘공산 분자 타도, 완전 독립 쟁취’란 혈서를 써 참가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으며, 1947년 6월경에는 위원장 이헌상 등이 좌익 학생들의 ‘독서회’ 본거지를 찾아가 서적 등을 압수, 소각하기도 하였다. 1948년 총선거 당시에는 전국 학생 총 연맹 인천 지부 회원들이 선거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고, 1949년 5월 10일에는 위원장 이계송, 부위원장 정국로 등이 개성의 ‘고려 청년회’ 초청을 받아 연사로 참가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의와 평가]

우익 계열의 학생 운동 단체가 학생 운동의 분열 상황을 반성하며 건설한 전국 학생 총 연맹은 해방 후의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발적으로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청년 학생들의 의지를 표출하며 발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학도 호국단의 결성과 함께 흡수·통합되며 해체됨으로써 해방 직후의 학생 운동의 정신이 국가 권력에 포섭되어 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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