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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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禮山尹奉吉義士遺蹟
이칭/별칭 예산 윤봉길 생가지,충의사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면 시량리 산40-1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최명진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 윤봉길의사기념탑 건립
    조성|건립 시기/일시 1968년연표보기 - 충의사 건립
    조성|건립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 윤봉길의사기념관 건립
    조성|건립 시기/일시 1978년연표보기 - 충의문 건립, 광현당 및 저한당 복원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8년 - 충의사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10월 14일연표보기 -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 사적 제229호로 지정
    현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산40-1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산40-1 지도보기
    성격 유적건조물
    관련 인물 윤봉길
    면적 141,007㎡
    관리자 예산군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229호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과 관련된 유적.

[개설]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1908~1932]의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忠義祠)와 윤봉길이 출생 이후 4세 때까지 살던 생가 광현당(光顯堂),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23세 때까지 살며 성장한 저한당(狙韓堂) 등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2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윤봉길이 생전에 사용하였던 유품들은 보물 제568호로 지정되어 있다. 13종 68점 가운데 10종이 보물 제568-2호로서 윤봉길의사기념관에 보관 중이고, 2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나머지 1종은 서울 윤남의(尹南儀) 집에 소장되어 있다. 윤봉길의사기념관에 소장된 10종의 유물은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공원[虹口公園, 현재의 루쉰공원]에서 의거를 할 때의 소지품이다.

[건립 경위]
1965년 윤봉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사업으로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탑 건립을 시작으로 1968년 사당인 충의사가 건립되었다. 1974년 윤봉길의사기념관이 건립되었고 1978년 충의문, 홍문 등을 세워 충의사건물을 중건하였다. 또한 광현당, 저한당 등이 복원되고 유물 전시관과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이 세워져 윤봉길 의사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1968년 충의사 창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과 첫 추도식이 이루어졌으며 박정희 대통령이 충의사라는 이름을 짓고, 친필 현판을 새겨 걸도록 하였다.

[위치]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덕산면에서 남서쪽으로 난 국도45호선을 따라 2.5㎞ 정도 가면 북쪽으로 야산의 중단부에 있다.

[현황]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면적 14만 1007㎡에 이르며, 영정을 봉안하고 제를 지내는 충의사를 비롯하여 광현당, 저한당, 야학회(夜學會)·월진회(月進會) 등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復興院)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사당 주변으로 윤봉길의 어록탑과 윤봉길의사기념관, 윤봉길이 성장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한 자료와 유적 등이 남아 있으며, 국내 유일의 보부상기념관이 함께 있다. 매년 4월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는 매헌 문화제가 열린다.

충의사는 전면 3칸에 측면 2칸의 주심포식 건물로 단장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잔디를 깔아 깔끔하게 정비하였고, 충의문, 홍문 등으로 사당 구역을 구분하였다. 사당 전방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윤봉길 의사 생가및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다. 생가는 담을 둘러 보호하고 있으며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윤봉길 의사 기념탑과 동상이 세워져 있고, 왼쪽으로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의 앞으로는 윤봉길이 4살 때부터 의거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던 23세까지 살던 집인 저한당과 윤봉길이 출생한 광현당이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윤봉길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면서, 또한 독립의 꿈을 품고 중국으로 떠나기 전 윤봉길이 애국과 계몽에 눈뜨며 독립운동의 전초를 예산에서 마련하였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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