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릉과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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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宣陵-靖陵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457년 - 성종 출생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462년 - 정현왕후 출생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488년 3월 5일 - 중종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494년 12월 24일 - 성종 사망
    조성 시기/일시 1495년연표보기 - 성종 선릉 조성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530년 8월 22일 - 정현왕후 사망
    조성 시기/일시 1530년연표보기 - 정현왕후릉 조성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544년 11월 15일 - 중종 사망
    조성 시기/일시 1562년연표보기 - 중종 정릉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70년 5월 26일연표보기 - 사적 제199호 지정
    현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100길 1 [삼성동 135-4]지도보기
    성격 능묘
    양식 동원이강능인 선릉|단릉인 정릉
    관련 인물 성종 |정현왕후 윤씨|중종
    봉분 크기/묘역 면적 면적은 198,813㎡[72,778평]
    소유자 국유
    관리자 선릉관리소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199호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조선 9대왕 성종과 그의 비 정현왕후(貞顯王后), 11대 왕 중종의 능묘.

[개설]
성종은 성종 25년(1494) 12월 24일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하였다. 연산군 원년(1495) 1월 14일 묘호(廟號)를 성종, 능호를 선릉으로 하고, 이 해 4월 6일 지금의 선릉 자리인 광주부 서면 학당리의 언덕에 예장되었다. 그 35년 후인 중종 25년 (1530) 8월 22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가 경복궁에서 69세의 나이로 승하하였고, 같은 해 10월 29일 선릉 동쪽에 예장되었다.

정릉(靖陵)은 조선 제11대 중종[1506∼1544 재위]의 능이다. 중종은 중종 39년(1544) 11월 창경궁 환경전(歡慶殿)에서 57세로 승하하였다. 정릉은 처음 경기도 고양시의 서삼릉에 있는 장경왕후(章敬王后)의 희릉(禧陵)과 함께 있었으나,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승 보우(普雨)와 의논하여 명종 17년(1562)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조성되었다. 중종을 이어 왕위에 오른 인종은 인종 1년(1545) 1월 5일 중종의 묘호·능호·전호(殿號)를 정하면서, 능호를 희릉이라고 하였다. 50일 후인 윤1월 25일 고양시의 현재 서삼릉 능역 내에 있는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서쪽 언덕에 능을 새로 조영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고쳤다. 명종 17년(1562) 문정왕후에 의해서 성종과 어머니 정현왕후의 능이 있는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 선릉의 동쪽 언덕으로 천릉하였고, 홀로 남은 장경왕후의 능을 희릉으로 환원하였다.

선릉과 정릉임진왜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1593년에 왜군에 의해 왕릉이 파헤쳐지고 재궁[왕과 왕비의 관]이 불타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또한 인조 3년(1625)에는 정자각에 불이 나 수리를 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능에 화재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왕릉의 경내에는 일반인의 출입이나 개간을 할 수 없는 지역임에도 조선총독부가 식량증산이라는 명목아래 두 무덤 사이 구릉 낮은 지대까지 개간을 허가하여, 한때 능의 영역 안에 사유농지가 생기기도 하였다.

한편 선·정릉은 관악산에서 이어진 우면산~매봉산~역삼공원~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내룡을 가지고 있는데 봉은사가 있는 수도산을 주산인 북현무로 삼고 있다. 조산(朝山)으로 남주작의 대모산·구룡산을 바라보고 있으며, 우백호는 멀리 내룡으로 둘려 있으나, 좌청룡은 없이 한강양재천이 만나는 저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수도산선릉과 정릉의 원찰인 봉은사가 있다.

정릉의 홍살문으로 나와 동쪽의 오솔길을 따라 평지를 걸으면 산기슭의 재실을 만난다. 재실은 선·정릉을 찾는 제관들의 목욕재계와 관인들이 제향을 준비하며 시설을 관리하는 사무공간이었다. 근래까지 관리사무실로 쓰였으나, 최근에 관리사무실을 별도의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위치]
강남구 삼성동 삼릉공원 경내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2호선선릉역에서 강남구청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능 입구이다.

[형태]
선릉은 동원이강릉으로, 성종 능의 좌향은 임좌병향(壬坐丙向)이고 정현왕후 능의 좌향은 간좌곤향(艮坐坤向)이다. 선릉은 정자각을 중심으로 서쪽 언덕에는 성종의 능, 동쪽 언덕에는 계비 정현왕후의 능이 배치되어 있다. 한편 세조의 유교(遺敎)에 따라 세조의 광릉 이후 조영된 왕릉에 세우지 않았던 병풍석을 성종선릉에 다시 세웠으며, 능침에는 석실을 쓰지 않았다. 정현왕후의 능에는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둘렸다.

왕릉의 상설을 살펴보면 3면 곡장 안 봉분에는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으며, 혼유석·장명등과 망주석·문석인·무석인 각 1쌍, 석호·석양·석마 각 2쌍이 있다. 왕비릉은 왕릉보다 규모가 작으며, 곡장이 있고,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둘러져 있으며, 나머지 상설은 왕릉과 같다. 왕비 능 난간의 석주 윗부분은 초기 난간의 부드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장명등의 양식은 태종의 헌릉을 따랐다. 문석인과 무석인의 얼굴은 중후한 느낌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지만, 몸에 비해 얼굴이 크고 목은 전혀 없어 전체적으로는 입체감이 없고, 몸집은 사각 기둥에 가공한 조각품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기둥 같다. 특히 무인석은 눈이 매우 크게 조각되어 있다. 왕릉의 문·무석인이 윤곽이 굵고 강직한 반면, 왕비릉의 문·무석인은 그 윤곽과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왕비릉의 무석인 뒷모습의 갑옷무늬가 유난히 선명해 보인다. 혼유석의 고석에는 살찐 도깨비로 보이는 나어두의 둥근 얼굴이 새겨져 있다. 두 봉분 언덕 아래에 정자각·비각, 그리고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음력 12월 24일 정오에 운 좋게 선릉을 방문한다면,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성종께 드리는 정성스러운 제사를 볼 수 있다.

정릉은 단릉이다. 정릉의 좌향은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상설은 성종선릉과 같이 『국조오례의』를 따르고 있다. 봉분은 3면 곡장으로 둘려 있으며, 능침에는 12지신상을 새긴 병풍석 12면을 세우고, 그 밖으로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만석(滿石) 꽃무늬가 선명하고 아름다워 눈길을 끈다. 석호·석양 각 2쌍과 망주석 1쌍, 혼유석이 있으며, 그 한 단 아래 중계에는 문석인·석마 각 1쌍과 장명등이 있다. 하계에는 무석인과 석마 각 1쌍이 있다. 사초지 아래에 정자각과 비각이 있으며,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재실은 선릉과 정릉 중간 지역 도로변에 있는데, 여름철 침수를 피하기 위하여 길바닥으로부터 2단의 층단 위에 건립되어 있다.

혼유석의 고석이 유달리 커 보이고, 장명등은 매우 화려하다. 석양과 석호의 전체적인 자세는 선릉과 비슷하면서도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반면 전체적으로 형식화된 경향이 있다. 석호의 익살스러운 입 모양이 재미있다.

문·무석인은 높이가 3m가 넘을 정도로 큰 편이다. 문석인은 선릉의 것과 거의 비슷하며 얼굴이 약간 두툼해 보이고 어깨가 풍성하게 보이지만, 목은 움츠려 표현되어 있지 않다. 몸집에 비해 얼굴이 지나치게 크게 표현되어 있고, 몸집이 각진 기둥에 조각을 조금 가한 것 같이 보이는 것도 선릉과 같다. 관모 뒤까지 사실적으로 새겼다. 또 무석인의 모습은 유난히 눈길을 끈다. 퉁방울눈에다 깨진 들창코를 한 얼굴이 재미있고 친근감을 준다. 깨진 들창코는 아들 낳기를 바라는 순박한 마음들이 갈아 간 것으로, 왕릉을 지키는 무인도 대를 잇고자 하는 본능은 이기지 못함인가 하는 생각에 웃음 짓게 한다.

정자각에서 봉분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물줄기가 흐르고, 오른쪽에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각 지붕 위에는 다시 만들어 올려놓은 잡상들이 뚜렷하다. 정자각에서 홍살문까지의 일대에는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어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참도가 유난히 길다.

[금석문]
선릉과 정릉의 능비가 각각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선릉의 능비 크기는 비신 150㎝, 폭 61.5㎝이고, 정릉의 능비는 높이 153㎝, 두께 39㎝이다. 선릉비의 앞면에는 ‘조선국 성종대왕선릉 정현왕후부좌강(朝鮮國 成宗大王宣陵 貞顯王后祔左岡)’이라고 새겨져 있고, 정릉비 앞면에는 ‘조선국 중종대왕정릉(朝鮮國 中宗大王靖陵)’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각 능비의 뒷면에는 음기(陰記)가 새겨져 있어 각 인물의 묘호·시호와 출생 및 승하하여 초장 또는 이장된 내역과 시호와 비의 건립 연월일을 새겼다.

[현황]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중종정릉(靖陵) 경역을 포함하여 198,813㎡[72,778평]의 면적에 선릉과 정릉을 합하여 ‘선·정릉’이라 부른다. 능역 안에 성종 능성종의 비 정현왕후 능이 동원이강 형식의 두 봉분으로 이루어져있고, 중종정릉이 단릉으로 이루어져, 세 능이 조성되어 있다고 하여 한때 ‘삼릉공원’으로도 불렸다.

테헤란로’의 중심지 지하철 2호선선릉역 인근의 초현대식 건물들이 자리한 업무지구 가운데 위치하여, 주변은 번화함과 복잡함이 서울에서 으뜸가는 곳이다. 어울러 녹지가 매우 부족한 강남 지역에서 선릉과 정릉은 근린공원의 성격을 띠며 사람들에게 휴식과 역사교육의 장소 구실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해진 조선 왕릉에 해당되어, 전 인류가 아끼는 문화유산이 되었으며, 봉분을 비롯한 상설배치 등은 조선시대 왕릉연구의 중요자료가 된다. 서울 도심에 재실 등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역사교육의 장으로도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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