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끝이자 시작, 마라도

대표시청각
button
관련항목 페이징
  • URL Copy
  • twitter
  • facebook
한자 韓半島-始作-馬羅島
이칭/별칭 마라섬,마래섬,금섬,마으렛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광중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1년 - 가파리에서 분리
[개설]
마라도는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에 속하는 섬으로, 행정리 명칭이자 대한민국 최남단에 자리 잡은 작은 유인도이다. 마라리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해 있는 스물세 개 행정리 중 하나로서 법정리로는 가파리[가파도]에 속한다. 즉 마라도는 행정리로서의 지위는 가지고 있지만, 아직 법정리로서의 지위는 갖고 있지 못하다. 1981년 4월 전에는 마라도가 행정 구역상 가파리에 속하여 지번(地番)도 가파리 산 7번지로 돼 있었으며, 마을 행정의 말단 조직에서도 가파리 8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81년 4월 1일자로 마라리가파리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행정리로 자리 잡는다.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마라도는 바로 인근에 위치한 가파도와 함께 제주도에 속하는 8개 유인도 중 하나로서,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국토 최남단이라는 이미지와 상징성 때문에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섬이 되었다. 마라도의 면적은 0.299㎢, 섬의 둘레는 4.2㎞, 길이는 남북 1.25㎞, 동서 약 500m이다. 주민등록 인구 통계로 보면, 마라도에는 2010년 12월 현재, 53세대 108명[남: 62명, 여: 4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외국인 거주자는 한 사람도 없다. 마을 주민들은 주로 어업과 관광업[민박 및 식당 경영]에 종사하고 있다. 마라도는 1997년 8월부터 제주도가 지정한 해양도립공원으로 관리되어 오다가, 2000년 7월 19일자로 천연기념물 제423호인 ‘마라도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존, 마라도에 서광이 비치다]
마라도는 대한민국 영토의 자존이다. 작은 화산섬인 마라도의 존재로 제주도의 영해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영해를 확대하는 중요한 기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라도의 주변 수역에는 다양한 해산물과 어종들이 풍부하여 섬 주민들의 마을 어장을 포함하여 제주도민들의 연근해 어업의 소중한 바다 밭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섬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까.

마라도에 맨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83년(고종 20)경부터로 알려진다. 그 전에는 무인도로 사람이 살지 않았으며, 간혹 대정읍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라도로 들어가서 큰 나무들을 해오거나 섬 주변의 해산물을 채취해 오는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전에 의하면, 마라도에 처음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한 사람은 당시 대정고을에 거주하던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김씨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게 되자, 살아갈 방법이 막막하여 그의 친척들이 당시 제주 목사(牧使)인 심현택(沈賢澤)에게 마라도 개척을 건의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의 이주가 행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윽고 마라도의 개척이 진행되자, 때를 같이하여 같은 마을[모슬포]의 나씨·이씨·한씨·황씨·심씨 등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개척에 참여함으로써 집단 이주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국토의 끝과 시작인 섬, 마라도는 어떤 섬인가]
마라도대한민국의 끝이자 시작을 알리는 국토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마라도는 북위 33°06′23″, 동경 126°16′10″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일본의 나가사키현[長崎縣], 서쪽으로는 중국 대륙의 상하이[上海]와 마주하며 북태평양 상에 떠있다. 마라도를 기점으로 보면, 북동 방향의 가파도까지는 5.5㎞, 송악산까지는 12㎞, 화순항까지는 12.6㎞, 그리고 서귀포 시청까지는 약 43㎞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은 해발 34m를 보인다.

마라도는 제주도의 남서쪽 해양 상에 보석과 같은 형태로 남북의 길쭉한 타원형을 이룬다. 지형적으로는 동쪽이 서쪽보다도 다소 높은 섬의 형태를 띤다. 제주도 본섬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마라도는 독자적인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작은 화산섬이기도 하다. 마라도의 지형은 비교적 평탄한 현무암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섬을 탄생시킨 분화구가 육상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해저의 화산활동에 의해 섬 자체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라도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의 모습을 취하는데, 북동쪽과 남서쪽의 끝자락 일부 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30여m에 이르는 벼랑[해식애]이 높게 발달돼 있다. 특히 해식애(海蝕崖)는 섬의 북서쪽과 동쪽에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 중에는 서울의 남대문 모습과 같다는 데서 ‘남대문바위’라 불리는 것도 있다.

[마라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마라도에 들어가려면,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모슬포항이나 상모리 산이수동 해안에서 마라도행 배를 타고 가파도를 경유하거나, 아니면 직접 마라도로 향해야 한다. 마라도로 향하는 배는 행정선이거나 관광 유람선이다. 배를 타고 25분 정도면 마라도에 도착한다. 물론 가파도를 경유할 때는 20여 분 더 걸리며, 게다가 파도가 거세질 때면 10여 분이 더 소요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만큼 마라도로 향하는 길목은 난바다의 특성을 지닌다.

마라도에 도착해서 맞는 바람은 때론 매섭기도 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대한민국의 끝이자 시작인 섬에서 맞는 의미심장한 바람인 탓이다. 마라도의 바람을 맞으며 섬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관광의 섬으로 변화한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보면, 뇌리 속에서만 그리던 마라도는 한층 더 가슴깊이 다가올 수 있다.

마라도에는 1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식당과 민박 경영, 물질[해녀 어업] 등에 종사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마라도에는 제대로 된 어선 정박 시설이 없는 관계로 주민들은 어선을 이용한 고기잡이는 하지 않는다. 시간이 날 때 갯바위에서 식탁에 올릴 몇몇 종의 고기를 잡는 정도이다. 마라도의 여성들은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는 해녀이기도 하다. 해녀는 2011년 현재 10명으로 크게 줄어들었으나, 소라·전복·오분작·성게·해삼 등을 잡으며 꽤 수입을 올린다. 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은 관광객들을 위해 직접 섬 내의 식당으로 판매되기도 하고, 잡은 양이 많을 때는 바지선으로 모슬포까지 건너가 개인별로 수협에 판매하기도 한다. 요즘, 마라도의 대세는 역시 전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식당과 민박 경영에 있다. 식당은 중국식당과 횟집 등을 아울러서 10여 군데, 민박을 경영하는 곳은 8군데 정도다. 53세대로 구성된 마라도의 세대수나 인구수를 생각하면, 이들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마라도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마을 주민들의 살림집은 거의 모두가 아담한 슬레이트와 양옥의 단층집이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살림집은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는 주택 지구는 섬의 중간쯤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라도에서도 2층집은 마을 복지회관을 비롯하여 일부 식당과 민박에 사용하는 몇 집에 불과하다. 민박과 식당으로 사용하는 살림집 겸 상가 건물을 제외한 섬사람들의 살림집은 과거에 초가집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내부를 극히 일부분만 개조한 실내 구조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벽체도 마찬가지다. 현무암으로 쌓은 사이사이를 시멘트로 바르거나 아니면 외벽 전체를 매끈하게 시멘트로 바른 후에 색칠을 했을 정도이다. 대개 이런 살림집들은 실내의 칸 구조가 크든 작든 3칸 형이다. 과거에는 3칸 정도의 크기면 최소한 4~5명의 일가족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든 노부부만이 거주하고, 자식들은 대부분 섬을 떠나 제주도 본섬이나 육지부의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살림집 처마 밑에는 사각형의 시멘트 구조물이나 플라스틱의 큰 물통을 설치해 두고 있다. 그리고 슬레이트 처마 끝과 물통 사이에는 플라스틱 관을 연결하여 빗물이 저절로 물통 속으로 흘러내리도록 고안되어 있다. 2004년 전만 해도 물통에 모인 물은 식수나 그 외의 생활용수로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담수화 시설의 완비로 1일 50톤 규모의 급수량을 공급받을 수 있어서 1인당 1일 급수량도 224리터로 크게 개선되었다.

살림집 주변에는 우영[제주도식 전통 텃밭]과 작은 밭들이 이어져 있다. 밭의 일부는 이미 잡초가 무성하여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것들이 많다. 노부부나 적은 수의 가족에게 필요한 채소류의 생산 면적만이 필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손길이 닿는 우영이나 작은 밭에는 배추와 무, 상추와 부추, 마늘과 고추 등을 심어 주로 일상에서의 음식재료로 쓴다. 주식인 쌀은 물론이고 그 외의 다양한 음식 재료들은 제주도 본섬으로부터 구입한 후에 저장하여 쓰는 지혜를 발휘한다.

살림집을 다소 벗어난 장소를 유심히 살펴보면, 아담하게 꾸며진 사자(死者)의 공간인 묘지를 만날 수 있다. 제주도의 묘지는 제주어로 흔히 ‘산’이라 부르는데, 이는 들판에 솟아 있는 산과 같이 봉긋하게 솟아 있는 데서 붙여진 것이다. 묘지인 ‘산’에는 대개 무덤을 중심으로 사자의 공간임을 나타내는 돌담[산담]이 사각 형태로 쌓아져 있다. ‘산담’이라 부르는 이 돌담은 들판의 화재가 묘지로 옮겨 가는 것을 막고, 또한 소나 말들이 들어가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산’들은 이미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최근에는 섬 안에다 묘지를 조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도 섬사람들은 마라도에서 태어나서도 쉽게 고향땅에 묻히지 못하는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국토의 상징, 마라도를 두 발로 느껴 보자]
마라도를 제대로 느끼려면, 한 시간 남짓 두 발로 걸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의 눈 속에 마라도의 제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최근에 2층 양옥으로 신축한 마라복지회관은 섬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설로, 섬을 일주하는 코스에서 아주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기도 하다. 마라복지회관을 지나 섬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하면 기원정사, 마라도등대[마라도항로표지관리소], 최남단비, 마라교회, 성당[마라도공소], 애기업개당[신당], 마라분교[가파초등학교]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또한 대문바위나 장군바위와 같이 자연이 조화를 부린 기암괴석과도 만날 수 있다. 대문바위는 곧 ‘형상[석] 바위’인데, 서울의 남대문과 같은 형상을 갖추게 되어 붙여진 것이다. 장군바위는 용암류가 높게 쌓이면서 마치 언덕처럼 솟아오른 바위를 가리킨다. 이 장군바위는 사람의 발자국이 닿으면 거센 바람이 분다는 전설 때문에 섬사람들은 결코 올라가는 일이 없다.

마라도의 랜드 마크격인 마라도등대는 오랜 역사[1915년 설치]를 자랑하는 등대로, 남지나해[남중국해]로 지나가는 어선들의 소중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최남단비는 1985년 10월에 세운 상징비로, 마라도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징표이기도 하다. 표석 정면에는 ‘대한민국최남단(大韓民國最南端)’이라는 한자어가 세로글씨로 쓰여 있다. 이들 외에도 섬 남쪽에 자리 잡은 초콜릿 전시장, 마라도 등대 근처의 손바닥 선인장 자생지, 섬 중앙부를 수놓는 억새밭 등도 마라도를 걸으며 느껴야 할 매력의 대상이다.

2
작성자 확인번호  
의견내용
등록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집필항목 검색 닫기
향토문화전자대전 로고 참고문헌 검색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