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산현 관아[내동헌, 외동헌, 내삼문, 외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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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稷山縣官衙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리 327-16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월 8일연표보기 - 직산현 관아[내동헌, 외동헌, 내삼문, 외삼문]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42호로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 - 직산현 관아 동헌 복원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0년 - 직산현 관아 외동헌 복원
    현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동리 327-16 지도보기
    성격 관아
    양식 민도리식
    정면 칸수 3칸[외삼문]|9칸[내삼문]|4칸[외동헌]|4칸[내동헌]
    측면 칸수 2칸[외삼문]|1칸[내삼문]|1칸 반[외동헌]|1칸 반[내동헌]
    소유자 천안시
    관리자 천안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유형 문화재 제42호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직산현의 관아.

[개설]
직산현 관아(稷山縣 官衙)는 조선 시대 직산현의 관아 시설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형태이고 일부는 면사무소로 쓰이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69칸에 이르는 관아 시설물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내동헌(內東軒)·외동헌(外東軒)·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4동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동리에 있다. 직산읍사무소와 서북 구청의 사이에 북쪽으로 난 직산로를 따라 2.3㎞를 가면 좌측에 직산안길이 있고, 이곳에서 700m 거리에 직산 초등학교가 있다. 직산현 관아직산 초등학교의 바로 옆에 위치한다.

[변천]
조선 후기 지리지인 『여지도서』에는 객사 19칸, 군기 6칸, 동헌 14칸, 내아 30칸 등 많은 건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4동의 조선 후기 건물만이 남아 있다.

직산현의 관아와 관련된 기록을 실록에서 찾아보면 1433년(세종 15), 1440년, 1442년에 온양 행차 시 세종이 직산에 들렀고, 1465년과 1468년에는 세조가, 1665년과 1666년에는 현종이 온양 온천에 가는 길에 직산에 머물렀던 기록이 있다. 인조의 계비 장열 왕후 조씨는 아버지 한성부원군 조창원이 직산 현감으로 있던 1624년에 내아 관사에서 탄생하였다. 1717년 숙종이 직산 영소정에 들렀고, 1750년에는 장헌 세자가 온천 행차 중 직산 동헌에서 쉬었던 일이 있다.

동헌은 직산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88년 면사무소를 이전하면서 1989년 복원되었다. 외동헌도 면사무소 부속 건물로 사용되다가 1990년에 복원된 것이다.

[형태]
직산현 관아는 내동헌, 외동헌, 내삼문, 외삼문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에서부터 내동헌·외동헌·내삼문·외삼문 4동의 건물이 위치하며, 가장 앞쪽의 외삼문은 관아의 출입문으로 2층 문루에 중앙에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는 현판이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다. 아문은 중층(重層) 누문(樓門) 형식으로 초익공계(初翼工系)의 팔작집인데 아래층에는 칸마다 판문(板門)을 달아 드나들게 하였고 위층은 마루를 깔아 누로 사용하게 하였다. ‘호서계수아문’이란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호서의 첫 관문이라는 뜻이다.

외삼문을 지나 동헌 앞에 내삼문이 있다. 전면 9칸, 측면 1칸 규모로, 가운데 칸에 솟을대문이 있고 양 옆에 각각 3칸, 5칸의 창고로 쓰이던 고방(庫房)이 달려 있다. 공포가 없는 민도리집이나 대문간만 팔각의 주춧돌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다.

내삼문을 지나면 외동헌이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에 전퇴(前退)가 달린 건물로 가운데 4칸은 대청이고 그 옆에 온돌방이 있다. 방형 주춧돌과 방형 기둥을 사용한 민도리집이다. 직산현에 부임한 현감이 근무하던 장소이며 직산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90년부터 1991년에 새로 복원되었다.

관아 시설 중 가장 안쪽에 자리한 내동헌은 현감의 살림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에 민도리집 양식의 팔작집으로, 오른쪽의 3칸은 마루가 달린 온돌방이고, 왼쪽 1칸은 부엌이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이후 각 군현의 관아 시설은 파괴되어 2013년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많지 않고, 그나마 몇 동의 건물만이 잔존한 경우가 많다. 직산현 관아 역시 4동의 건물만이 남았을 뿐이다. ‘호서계수아문’이란 현판이 걸린 직산현 관아의 문루는 조선 시대 문루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직산 고을이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에 있었음을 상징하는 유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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