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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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玩月洞
영어의미역 Wanwol-dong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서구 천마로 232-4[충무동 2가 40]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성격 유곽
    준공 시기/일시 1911년 3월 - 완월동 일부[녹정 1정목] 토목 공사 완료
    개관|개장 시기/일시 1912년 1월 - 녹정 유곽으로 명명
    개칭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녹정 유곽에서 완월동으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82년연표보기 - 완월동에서 충무동으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4년 2월 2일 - 녹정유곽조합 성립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 3가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서구 천마로 232-4[충무동 2가 40]지도보기
[정의]
1912년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동에 생긴 부산의 대표적인 유곽.

[건립 경위]
1900년대 좌수토원(佐須土原) 유곽[현 중구 부평동 족발 골목]은 일본인 거류지 관외 지역에 있었다. 일본인의 증가로 일본인 주거지가 부족하게 되어 동쪽 해안으로는 매축이, 서쪽으로는 시가지가 확장되어, 자연스럽게 일본인 거류지 관외에 위치했던 좌수토원 유곽이 시가지로 편입되어 버렸다. 이에 유곽의 격리와 풍기문란을 막기 위하여 유곽 이전이 불가피하였다. 따라서 유곽은 1910년까지 녹정(綠町)[완월동, 현 서구 충무동 3가]으로 이전하였고, 이때 일본 거류지 관내 유사 업종인 요리점도 1911년까지 녹정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11년 3월 일부 부지[녹정 1정목(町目)]의 토목 공사가 완료되어 일본 거류지 관외 유곽은 모두 이전하였고, 1911년 12월 일본 거류지 관내 요리점의 이전 문제도 해결되어, 1912년 1월 처음 녹정 유곽으로 불리게 되었다.

[변천]
1916년 3월 경무총감부령 제4호 「대좌부 창기 취체 규칙(貸座敷娼妓取締規則)」의 발표로 매춘 관리법을 획일화하고 공식적으로 매춘을 관리함으로써 공창이 시작되었는데, 부산의 대좌부(貸座敷) 영업 지역 중에 완월동(玩月洞)도 지정되고 있다. 1947년 미군정 하에서 공창 제도가 폐지되고, 1948년 녹정이라는 이름 대신 완월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이 이용하면서 이곳을 녹정의 영어식 표현인 그린 스트리트(Green Street)로 부르기도 하였다.

1961년 「윤락 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해 매춘을 금지하여 사창화되었다. 1982년 주민들의 요구로 현재의 법정동 명칭인 충무동으로 변하였다. 1991년 7월 1일에 「청소년 보호법」이 발효되어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레드 존]이 설정되어 청소년들의 통행이 24시간 금지되는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구성]
일본 거류지 관외에 있던 유곽이 시가지의 확장으로 관내로 편입되게 되어 일본인 거류지와 떨어진 아미산 아래 녹정을 유곽지로 선정해 일본 거류지 관외 유곽과 일본 거류지 관내 유곽 모두 풍기문란을 방지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유곽지로 선정된 녹정을 두 개의 지역으로 나눠 1정목(町目), 2정목(町目)으로 하여, 1정목은 일본 거류지 관외 유곽, 2정목은 일본 거류지 관내에 있던 유사 업종인 요리점이 이전하였다.

1961년 보건복지부가 서구 충무동 2가, 충무동 3가, 초장동 86-109번지 일대 80여 개 업소를 특정 지역으로 고시해, 도로 안쪽과 주택가과 떨어진 곳에서 영업을 해 왔으나 1990년대 후반 안쪽의 업소는 줄어들었지만 도로변과 주택가로 확대되어 85개 업소에 이르고 있으며, 송도윗길 도로변까지 진출하고 있어 생활환경을 해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1999년 서구 충무동 2가 40번지 일대[속칭 완월동] 주변이 주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현재는 소규모의 아파트와 상점, 성매매 업소가 혼재되어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졌지만 구획이나 골목은 변함이 없고 여전히 성매매 업소가 존재하고 있어 이 지역이 성매매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현황]
1910년 녹정[완월동]의 유곽 수는 34호 내외였다. 이 중에 2호가 조선인 기생[창기]을 두고 영업을 하였다. 1910년대 녹정[완월동]의 매춘업 종사자 수는 250명 내외로 당시 부산의 다른 지역 공창보다 유곽 수나 매춘업 종사자 수가 많았다. 1910년대 녹정[완월동]을 이용하는 손님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고 조선인도 3~4%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국인과 일본인 손님들이 주로 찾으면서 외화 획득의 주요 창구가 되어 단속도 느슨해졌다. 1970년대에는 성매매를 하는 여관이 124곳이나 되었고 당시 매춘업에 종사하는 등록된 성매매 여성은 1,250명이고 미등록자들까지 합치면 약 2,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에 해당된다.

1995년 영업을 하는 업소는 90개소, 성매매 여성은 800명으로 1970년대 이후 업소나 성매매 여성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1995년 1월 6일 「윤락 방지법」 개정 후, 손님 수는 줄어들었으나 문을 닫는 업소는 없었다. 1998년 IMF에도 불구하고 업소 수는 84개소, 성매매 종사자 수는 800~900명에 이르고 있어, 이전에 비해 업소 수는 약간 줄어들었으나 성매매 종사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2001년 업소 수는 84개소, 성매매 종사자는 690명, 손님은 하루 600~700명, 업주는 월 평균 1600여만 원, 성매매 종사자는 월 평균 2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4년 「성매매 단속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매매춘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 단속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업소와 성매매 종사자는 이전보다 줄어들었고, 한편에서는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자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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