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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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獨立運動家
영어음역 Dongnip Undongga
영어의미역 Independence Fighter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순철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거나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0년대~1920년대 전반]
일제의 무단 통치기에 활동한 독립운동의 성격은 주로 무장 성격을 띤 적극적인 항일 운동 세력과 3·1운동을 기점으로 만세 운동에 앞장 선 독립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시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는 유장렬(柳漳烈)로, 그는 의병장 이석용 휘하의 부장(副將)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2년 항일 비밀 결사인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에 가입, 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 및 일본군 철병 요구서를 제출하였다. 1914년에는 한훈(韓焄) 등과 같이 경상북도 풍기에서 광복단(光復團)을 조직하여 전라도에서 친일파 양재학(梁在學)·서도현(徐道賢) 등을 사살하고, 오성(烏城)에 있는 일본 헌병 분견소를 습격, 무기를 탈취하였다.

최전구(崔銓九)는 1911년 동지를 규합하여 광복단 조직에 참여했다가, 1917년 12월에 붙잡혀 영종도(永宗島)에 유배되었다. 이밖에 철원애국단에 소속되어 활동한 강대선(姜大宣), 독립의금부 참모관을 지낸 강영문(姜永文), 전라북도 독립운동감독부 고문을 맡은 신용수(愼鏞秀)가 있다. 1910년을 전후해서는 박도경(朴道京)·서종채(徐鍾採)·고석진(高石鎭) 등이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고창 지역 만세 운동은 백관수(白寬洙)김성수(金性洙)를 비롯한 중앙에서의 초기 주도자에 힘입어 3월 10일을 전후하여 성내면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성내면 월산리에 거주하는 청년 이종철(李鍾喆)과 학생 이대성(李大成)·이종주(李鍾株)·유판술(劉判述) 등은 솔선하여 만세 운동에 앞장 설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선언서를 등사하고 취지서를 작성하는 등 만세 운동을 준비하며 13일에 학교 앞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삐라도 살포했는데, 이 사실이 흥덕면 주재소에 알려져 이종철 등 4명이 일본 경찰에 검속되어 성내면에서의 거사 계획은 좌절되었다.

무장읍내의 만세 운동은 김영완(金永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김영완은 마을 유지 이용욱(李用郁)·김용표(金容杓)·김상수(金相洙)·이준구(李俊久)·김진호(金辰鎬)·박흥선(朴興先)·오태근(吳泰根)·박흥수(朴興洙)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3월 15일 무장읍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를 단행하였다. 또한 고창읍에서는 오동균(吳東均)·김승옥(金升玉)·김창규(金昌奎) 등이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었다.

[1920년대 중반]
1920년대 중반은 사회주의 운동 또는 아나키즘[무정부주의]이 주목되는 시기이다. 1926년에 일어난 6·10만세 운동은 조선공산당과 깊은 관련 속에서 추진되었다. 또한 해외 독립 활동을 위해 꾸준히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항일 운동에도 매진하였다. 당시의 독립운동가로는 고창 지역 청년회 활동에 앞장선 김승옥, 군자금 모집에 앞장 선 노진룡(魯鎭龍), 3·1운동에도 참여했으며 1928에 전북기자단 부회장으로 독립운동을 한 오동균, 조선농인사(朝鮮農人社)를 조직하여 활동한 오의균(吳毅均) 등이 주목할 만하다.

[1930년대 이후]
1930년대 이후 식민지 조선은 만주사변·중일전쟁·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엄중한 감시로 전시 동원 체제 아래에 있었다. 이때 적색노조 및 농조를 조직하던 공산주의자들이 일제의 가장 중요한 경계 대상이 되었다. 이외에도 고창 출신으로 해외 독립운동과 국내 학생 운동에 앞장 선 이들과, 일제의 패망을 예고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한 이들도 일본 경찰의 감시 하에 있었다.

당시의 독립운동가로는 일본에서 학생 운동을 했던 강수원(姜壽元), 중경에서 광복군 제1지대 대원으로 활동한 박석권(朴錫權)이의신(李義臣), 연희전문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조선학생동지회를 이끌었던 김상흠(金相欽), 구국결사단을 조직하고 김제군 내의 일본 헌병대와 경찰서 습격 계획을 추진한 김영수(金永壽), 1935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동맹 휴학을 주도하고 비밀 결사인 반제동맹(反帝同盟)을 결성한 황영구(黃榮九),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신인동맹(神人同盟)을 조직하고 동지 획득과 하부 조직 결성 및 자금 조성 등의 활동을 한 김재영(金在永)·정공일(鄭公一)·정휴규(鄭休圭)·정동원, “2차 대전에서 일제는 패망하고 왜놈들은 모두 죽여 마땅하다.”는 반일 시국담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송한룡(宋漢龍) 등이 있다.

[독립 유공자]
고창 지역 출신이거나 고창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은 사람들은 강대선·강대영(姜大榮)·강수원·강영문·강종회(姜鍾會)·고석진·고순진(高舜鎭)·고예진(高禮鎭)·고용진(高龍鎭)·고제남(高濟南)·고제만(高濟萬)[고치범고제천(高濟川)·김공삼(金公三)·김대옥(金大玉)·김상묵(金相默)·김상오(金相五)·김상흠·김성수·김승옥·김영수·김영완(金永玩)·김재관(金在寬)·김재영·김재화(金在華)·김중구(金仲九)·김창규(金昌奎)·노병희(魯炳憙)·노진룡·박도경·박석권·박영관(朴永寬)·백인수(白麟洙)·서종채·송한룡·신용수·신종주(愼宗周)·신화산(愼華山)·오동균·오의균·오장환(吳壯煥)·원용학(元容鶴)·유금동(柳今童)·유장렬·유판술·유희영(柳熙永)·이석렬(李錫烈)·이용욱(李用郁)·이의신·이종주·이종택(李鍾澤)·이철형(李哲衡)·이화백(李花白)·정공일·정시해(鄭時海)·정창묵(鄭昌默)·정휴규(鄭休圭)·최전구·황영구·황종관(黃鍾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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