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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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李居易
영어음역 I Geoi
이칭/별칭 낙천(樂天),청허당(淸虛堂),청허자(淸虛子),문도(文度)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호수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낙천(樂天), 호는 청허당(淸虛堂) 또는 청허자(淸虛子). 평장사(平章事) 이공승(李公升)의 6세손으로 문간공 이정(李挺)의 넷째 아들이다.

[활동사항]
이거이(李居易)는 1348년(충목왕 4)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관직이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에 이르렀다. 조선 왕조의 건국에도 참여하여 1393년(태조 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에 임명되었다. 뒤이어 평안도병마도절제사·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참찬문하부사·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이거이의 본격적인 현달은 왕자의 난이 일어나 태종이 집권한 이후부터이다. 이거이는 왕자의 난 직후 정사공신(定社功臣)에 책훈되었으며, 또한 태종이 즉위한 직후에는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올랐다.

태종의 연이은 공신 책봉에는 이거이가 조선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는 개국공신은 아니었지만 두 아들, 즉 장자인 이애(李薆)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장녀 경신공주(慶愼公主)와 혼인하여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올랐으며, 넷째 아들 이백강(李伯剛)태종의 장녀 정순공주(貞順公主)와 혼인하여 청평부원군(淸平府院君)에 올랐다. 즉, 태조태종의 2대에 걸쳐 부마를 배출한 집안으로, 이러한 특수한 관계는 이거이가 그만큼 조선 왕실과 밀접한 관계였음을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 현달도 충분히 예견될 수 있었다.

그러나 1400년(정종 2)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의 지위에 있으면서 군제 개혁의 핵심 내용인 사병 혁파 조처에 반대하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아 한때 계림부윤(鷄林府尹)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402년(태종 2) 좌명공신이 되고 영사평부사(領司平府事)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책봉되었다. 그 뒤에도 다시 대간의 탄핵을 받아 향리로 방축되어 아들 이애와 함께 진천에 은거하였으나, 또 다시 복직되어 우정승을 거쳐 영의정의 지위까지 올랐다.

[묘소]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멱수마을 뒷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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