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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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民俗-
영어음역 Minsoknori
영어의미역 Folks Gam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안산시
집필자 이성학
[정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전승되고 있는 안산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개설]
본래 놀이는 인간의 유희본능(遊戱本能)과 모방본능(模倣本能)에서 비롯되었으며, 처음 신에게 제의(祭儀)를 행하는 행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행사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민간에 널리 보편화됨으로써 그 원래의 신성성(神聖性)은 약화되고 오락성만이 강화되어 일반 사람들의 유희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놀이가 되었던 것이다.

안산의 민속놀이는 안산 지역의 기후와 지리적 풍토, 지역 주민들의 생활 습성이 반영되어 고유 놀이로 정착된 것으로써 반복·전승과 발전·변화라는 속성을 지닌다. 민속놀이는 흔히 민속오락·민속경기·민속유희·민속예능·전승놀이·향토오락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곧 민속놀이라는 개념 속에는 흥을 돋우는 유희성, 즐거움을 나타내는 오락성, 싸움을 뜻하는 경쟁성, 아름다움을 뜻하는 예술성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민속놀이는 오랜 세월 동안 관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한 해의 길흉이나 풍흉을 점치는 연중행사로 이루어지다가 신앙적인 요소가 탈락하면서 경기적·오락적 놀이로 남겨진 것들이 많다. 특히 민속놀이는 겨루기 형식을 지니고 있는데, 이 겨루기 형식은 가장 적극적인 재미의 요소이다. 놀이는 흥을 부추기고 신명을 고조시킨다. 이것은 사람들을 집단화시키며 대동성을 획득케 한다.

[일제강점기의 놀이]
1936년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각 도지사에게 조회하여 조사한 『조선의 향토오락』에서는 당시 행정구역상 안산이 속해 있었던 시흥 지역 23개 놀이의 노는 시기, 대상, 방법 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윷놀이[정월: 일반놀이], 줄다리기[정월 혹은 2월: 일반놀이], 달맞이[정월보름: 일반놀이], 쥐불놀이[정월: 어린이놀이], 널뛰기[정월: 여자놀이], 연날리기[정월보름부터: 어린이놀이], 다리밟기[정월보름: 일반놀이], 돈치기[봄: 어린이놀이], 그네[5월: 일반 여자놀이], 단오[5월 5일: 일반 여자놀이], 천렵[여름: 일반 남자놀이], 복놀이[삼복: 일반 남자놀이], 농악[김매기철: 농민놀이], 산놀이[봄: 청년놀이], 풀겨루기[봄: 어린이놀이], 씨름[7, 8월: 청소년놀이], 호미씻이[8월: 농민놀이], 팽이치기[겨울: 어린이놀이], 썰매타기[겨울: 청소년놀이], 활쏘기[수시: 유림, 일반 남자놀이], 경로회[경사 때: 일반놀이], 시회[수시: 유림], 진치기[수시: 어린이놀이], 숨바꼭질[수시: 어린이놀이] 등이다.

[의례와 놀이]
의례에 따른 놀이는 세시풍속과 가장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절기의 매듭을 지어 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감에 있어 박차를 가하는 민속놀이는 세시마다 항상 함께 어우러졌다. 이에 따른 놀이들은 지역공동체 문제와 관련되어 대규모로 이루어졌으며, 그 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한편 통과의례에 따른 놀이들은 사람의 일생을 중심으로 개인적·가족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소규모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무병장수와 재액초복을 비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무속의례에 따른 놀이들은 위의 두 가지 기능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분류 및 특징]
놀이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놀이에 참여하는 수에 따라 개인놀이와 집단놀이로 나눈다. 이를 다시 놀이하는 연령층에 따라 어른놀이와 아이놀이로, 놀이를 하는 성별에 따라 남성놀이와 여성놀이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1. 아이들 놀이

아이들 놀이는 남자 아이들 놀이와 여자 아이들 놀이,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놀이가 있다. 아이들 놀이는 대부분 간단한 도구로 하는 단순한 놀이로서, 놀이감을 주위에서 손쉽게 구하거나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아이들 놀이는 대체로 노는 아이들의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특히 아이들 놀이는 지역성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조선의 향토오락』에 나타난 아이들 놀이로는 쥐불놀이·연날리기·돈치기·풀겨루기·씨름·팽이치기·썰매타기·진치기·숨바꼭질 등 9종이 있는데, 근래에는 쥐불놀이·돈치기·풀겨루기·진치기 등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다음에 소개하는 놀이는 현재 전승되고 있거나 1980년대까지 전승되었던 놀이들이다.

1) 남자 아이들 놀이

남자 아이들 놀이는 딱지치기·자치기·비석치기·팽이치기·제기차기·깡통차기·땅따먹기·말타기 등 대체로 치기와 차기 형식이 많다. 이러한 놀이들은 맨몸으로 할 수 있으며, 놀이감도 대개 단순하고 간단한 것들이라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다. 즉 어린이 놀이는 자족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이외에도 쥐불놀이·연날리기·팽이치기·썰매타기·구슬치기·고누·낫치기·땅빼앗기 등이 있다.

2) 여자 아이들 놀이

공기놀이·고무줄놀이·모래주머니받기·사방치기 등 놀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들이 많다. 놀이 방법은 대체로 뛰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놀이 때 사용되는 것들은 복잡하지 않고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품이나 직접 만들어서 놀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3) 남녀 아이들 공통 놀이

남자나 여자 구분 없이 노는 아이들 놀이로는 가마놀이·그림자놀이·눈싸움·방아깨비놀이·팔랑개비돌리기·줄넘기·다리세기·술래잡기 등이 있는데, 대부분 과격하지 않고 혼자서 즐기거나 여럿이 있어도 편가름이 필요 없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이외에도 닭싸움[깨금발싸움]·실놀이 등이 있다.

2. 성인놀이

1) 여성놀이

그네, 널뛰기, 달님놀이, 화류(花柳)놀이[3월 중 날씨가 화창한 날을 잡아 가까운 산에 올라 하루를 즐겁게 지냄] 등이 있다.

2) 남성놀이

남자들 놀이의 경우는 세시풍속이나 계절의 변화에 관계없이 수시로 즐길 수 있는 놀이는 거의 없다. 한 예로 지신밟기나 풍물 및 호미씻이 등은 세시풍속이나 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생산적 의미와 공동체적 기능을 지닌 축제 형식을 떠나서 이루어지는 남자들의 놀이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나마 씨름[팔씨름, 다리씨름 등], 돈치기, 엿치기, 승경도놀이[승경도놀이는 조선 시대 양반층 자제들이 주로 놀았던 놀이로서 윷놀이와 비슷하다.] 등이 있다.

3) 남녀 공통 놀이

윷놀이, 다리밟기[정월 대보름날 밤에 다리를 밟는 것으로 ‘답교(踏橋)놀이’라고도 함], 달맞이, 복놀이 등이 있다.

3. 집단 놀이

1) 둔배미놀이

둔배미놀이는 둔배미 어부들의 출항에 대한 염려와 도장원[만선] 귀항에의 기원을 민속놀이화한 것이다. 서해안에 접한 농촌이라는 안산의 지역적 특수성을 살려 만선과 무사귀환이라는 어부들의 절실한 소망과 마을에서 논매기 작업에 몰두하던 농부들의 농요가 어우러져 발달된 것이다. 즉 징·꽹과리·북·쇄납[태평소] 등을 들고 부르는 만선풍어노래인 「배치기 소리」와 농촌의 노동요가 한데 어우러진 대동축제가 안산 둔배미놀이이다.

광복 이후에도 원포[둔배미]의 배치기와 유사한 어부들의 놀이는 만선의 기쁨을 나누는 신나는 대동축제로 맥을 이어 오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옛날 시흥군 군자면 신길리 일대에서 불리던 농요는 거의 원형대로 보존·전래되어 왔다. 다방면에 걸친 조사와 고증을 통해 마침내 1989년 9월 7일 원포 배치기와 신길리 농요를 합친 대동축제로서 ‘안산 둔배미놀이’를 광복 후 처음으로 재연하였다. 이후 안산시의 주요 문화행사 때마다 참가하여 공연을 지속해오고 있다.

2) 와리풍물놀이

와리풍물놀이는 일명 ‘와상농악(瓦上農樂)’, ‘동작리두레풍물놀이’라고 하는데, 마을에 재인(才人)이 많이 살아 조선시대부터 그 명성이 높았다. 조선 후기 경복궁 재건 당시 동작리 사람들도 노역부대로 동원되어 수십 명이 노역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와상리(瓦上里) 노역부대(勞役部隊)는 큰 깃발을 앞세우고 풍물가락에 힘을 돋우며 신명나게 일을 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현장에 나왔다가 이를 보고 크게 치하하여 친필 농기와 농악기, 그리고 노역부대 전원에게 무명 한 필씩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 후 와상리 두레의 농기는 양반기 대접을 받았고, 와상리 두레는 선생 두레로 불려 다른 마을의 두레와 마주치면 세 번 반의 인사[농기를 눕히고 휘둘러 땅을 쓰는 형태]를 받고 두 번 반의 답례를 했다 한다.

한일합방 이후 위축되기 시작한 와리풍물놀이는 일제강점기 말에 거의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해방 후 다시 성행하여 1950년대에는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1960년대 이후 활동이 점차 축소되어 오던 와리풍물놀이는 1976년부터 시작된 안산신도시 개발사업으로 많은 이주민이 생겨나고, 생업이 농업에서 상업·공업으로 바뀌면서 그 활동이 위축되어 오다가 1987년 50여 호가 살던 마을이 완전히 폐동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다. 다만 단원구 와동 이주민 단지로 이주한 천병희·장석준·오월봉·장필순·김정환·방진섭 등이 그런대로 가락과 판굿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 1980년대 후반 재현되어 ‘와리풍물놀이’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황]
1970년대 말을 거쳐, 1980년대에 들어 본격화된 신도시 건설로 안산 지역 문화는 도시 문화권 범주에 들어갔다. TV를 비롯한 전자제품의 보급 등으로 인해 여가시간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안산 지역의 전통 놀이문화는 급속히 변동되었다.

놀이 방법이 변모되는 것은 물론이고, 성별·연령층 구별도 변하였다. 아이들 놀이와 어른 놀이가 구별되던 것이 일부는 구분이 모호해졌고, 사회적 관습과 성차별이 점차 극복되면서 남녀 놀이도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이전의 민속놀이는 지역의 향토적 특성과 의례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민속놀이는 상대적으로 오락적 기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놀이문화에 있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온 연령층은 청·장년층이다. 이들은 농촌 노동력의 근간을 이루는 연령층으로서, 세시풍속과 관련하여 절기마다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던 연령층이다. 그러나 농촌의 도시화 또는 이농 현상과 그에 따른 농촌사회의 구조 변동이 놀이문화를 감소시키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특히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는 공동 놀이의 경우 인원수의 제한으로 놀이마당을 거의 펼칠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두레싸움, 씨름, 갈퀴치기, 낫치기, 지게놀이, 지경다지기, 거북놀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도시로의 진학 또는 컴퓨터와 같은 매체를 통한 놀이의 보급은 어린이 놀이의 감소와 새로운 놀이의 발생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30대 전후 계층이 놀았던 상당수의 놀이들은 지금까지도 즐기고 있다. 가령, 공기·고무줄·비석치기·사방치기·팽이치기·제기차기·경찰놀이·진실게임·찐뽕·고누·연날리기·그네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개발바닥 소발바닥·돈가스·밀어내기놀이·스케이트보드·자동차게임·요요게임 등과 같은 놀이가 새롭게 생기기도 하였다.

노년층의 놀이로서는 장기·바둑놀이·화투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노인 놀이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화투를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도박성보다는 오락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편, 농촌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경로잔치나 효도 관광을 통한 야유회 놀이가 증가하였다.

오늘날 안산 지역의 놀이는 설과 추석에 일부 종목에 한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놀이의 종류도 적고 마을 전체보다는 가족 위주로 놀이가 진행되는 정도이다. 마을의 단합을 위해 윷놀이나 줄다리기를 벌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 또한 비정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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